해변서 애정행각 '즉석만남 성지' 변질…동해 인파, 양양만 급감
'섶세권' 인구 해변 매출 반토막…"'MZ만의 성지' 넘어설 필요"
(양양=뉴스1) 윤왕근 기자 = 올여름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강원 동해안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이 75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동해안 6개 시군 중 '서핑 성지'이자 '한국의 이비자'라고 불리던 양양은 유일하게 피서객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급변하는 관광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고, 'MZ만의 성지' 너머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역대급 폭염' 동해안 750만 찾아…양양만 10% 감소 19일 강원도 글로벌본부에 따르면 지난 주말을 끝으로 강원 동해안 6개 시군 86곳 해수욕장은 대부분 폐장 수순에 들어갔다.
말복이 지나도 폭염이 이어지는 탓에 연장 운영을 결정한 동해안 최북단 고성지역 해수욕장 3곳(봉포·아야진·천진)을 비롯해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개장이 늦었던 동해안 북부권 해수욕장 일부는 이달 말까지 문을 열지만, 그 외 주요 해수욕장은 모두 폐장한 상태다.
동해안 해수욕장들은 올해 사상 첫 6월 개장(6월 29일 경포해수욕장)과 함께 여름 손님을 의욕적으로 맞았다.
그 결과, 올여름 강원 동해안 해수욕장의 누적 방문객 수는 이달 18일 기준 750만 600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647만 1352명)보다 16% 증가한 수치다.
동해안 대표 해안 관광도시 강릉의 경우 올여름 253만 9132명의 피서객이 찾아 동해안 6개 시군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196만 5693명)보다 29.2% 늘어난 것이다.
'동해안 최북단' 고성엔 203만 9348명이 찾아 그 수가 지난해(169만 5266명)보다 20.3% 증가, 강릉의 뒤를 이었다.
삼척 역시 78만 4536명이 방문해 지난해(70만 4813명)보다 11.3% 늘었고, 동해시 역시 76만 2602명(지난해 70만 2602명), 속초시 68만 8818명(지난해 63만 5418명)으로 각각 방문객이 작년보다 8%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서핑 성지' 양양(69만 1160명)은 동해안 6개 시군 중 유일하게 지난해(76만 7560명)보다 방문객이 10% 남짓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MZ 손님' 안 찾자 매출 반토막 난 '섶세권'
일부에선 각 지자체 집계의 정확도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수치만으로 양양의 올여름 흥행을 논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서핑 성지' 명성을 얻어 다른 해안권 지자체로부터 '선진지 대접'을 받던 양양의 '위기'는 지역 상인들이 먼저 전하고 있다. 특히 'MZ의 성지'로 '서울특별시 양양구 인구동' 소리를 들었던 '섶세권' 인구해변과 죽도해변의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한다.
양양 현남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 씨는 "인구 쪽의 규모가 큰 게스트하우스나 식당 매출이 작년 대비 반토막 났는데 이마저도 선방한 거라고 자평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매출이 70% 정도까지 떨어졌다는 업장도 있어 젊은 상인들이 가게를 내놔야 하는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성수기 금요일이었던 이달 8일 오후 인구해변은 예년과 달리 한적한 모습을 보였다. 당장 지난해까지만 해도 낮엔 슈트를 입은 서퍼가 서프보드를 들고 해변을 거닐고 힙한 음악이 하루 종일 울려 퍼지는 백사장과 거리엔 전국에서 모인 '선남선녀'들이 브랜드 맥주를 들고 뜨거운 밤을 보내는 모습이 인구해변의 일상이었다.
◇"'MZ 성지' 너머 진짜 '서핑 성지' 모습 갖춰야"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이 같은 인구해변 모습이 역설적으로 '서핑 성지' 양양의 모습을 해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민 B 씨는 "양양이 서핑으로 유명해진 것은 불과 10년 안팎인데, 처음엔 순수 서퍼들이 소규모 해변에 자발적으로 모여 즐기던 형태였다"며 "이후 서핑이 목적이라기보단 클럽이나 즉석만남을 즐기는 곳으로 변질되면서 순수성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인구리는 매년 여름 클럽과 해변 스테이지에서 밤늦게까지 울려 퍼지는 음악 때문에 소음 민원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 새벽까지 술에 취한 젊은 남녀가 과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통에 '가족 해변'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인구 2만 명이 조금 넘는 양양이 서핑을 통해 '한국의 보라카이'로 뜨자 해안 자원을 가진 전국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서퍼비치를 조성, 양양만의 차별성이 없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양양이 뜨자 초고층 숙박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슬슬 나타나는 것 또한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전문가들은 "양양이 진정한 '서핑 성지'로 거듭나기 위해선 유행에 민감한 특정 세대에 흥행 여부를 맡기기보단 '서핑 대중화'를 통한 관광 기능 회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윤호 강원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전국 해변 어디서도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요즘 양양에 순수하게 서핑하러 가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며 "양양이 진정한 '서핑 성지'라면 진짜 '서핑'을 매개로 한 아이템이 있어야 장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지금처럼 서핑업체 중심의 비치보다 아카데미 등 시스템 다양화를 통해 서핑 문화를 일반 대중에게 이식함으로써 이들이 '서핑'하러 양양을 다시 찾게 해야 한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양양군 관계자는 "사실 양양엔 가족 단위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해변이 20여곳이나 있는데, 특정 해변의 부정적 모습만 비쳐 아쉽다"며 "인구해변의 피서객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해변을 찾는 세대가 직전보다 다양해졌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양에 서핑숍이 처음 생긴 게 2009년이고,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을 기점으로 양양 서핑 문화가 고속 성장했다. 여기서 오는 성장통"이라며 "서핑을 지속 가능한 문화로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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