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서 영그는 '신의 물방울'…프랑스도 넘겠다는 중국의 '와인 1번지'[이도성의 안물알중]
이도성 기자 2024. 8. 20. 06:01
이도성 특파원의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몰라도 되는데 알고 나면 '썰' 풀기 좋은 지식 한 토막. 기상천외한 이웃나라 중국,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도성 특파원이 전합니다. "
“와이너리가 있는 곳에 길이 생긴다”
누런 황무지에서 푸른 포도밭으로 천지개벽한 허란산(賀蘭山) 동쪽 기슭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중국 중부 닝샤후이족자치구에 위치한 이곳에선 중국을 대표하는 '닝샤 와인'의 역사가 40년째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중국 중부 닝샤후이족자치구와 네이멍구자치구 사이 남북으로 300km 뻗은 허란산의 동쪽 기슭은 광업으로 먹고살던 지역입니다. 불과 1970년대까지 모래와 자갈을 캐며 살았죠.
하지만, '신의 물방울'이 모든 걸 바꿔놨습니다. 척박한 기후는 오히려 포도알을 살찌우는 천혜의 환경이었던 겁니다.
연간 누적 3천 시간 넘게 햇볕이 내리쬐면서도 비는 고작 200mm도 내리지 않습니다. 해발고도는 1,100m대에 일교차가 15도나 됩니다.
모든 조건이 와인용 포도를 키우는 데 딱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여기에 서쪽의 허란산이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동쪽으론 황허가 젖줄이 되어줍니다.
1984년 처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닝샤 와인'은 40년에 걸쳐 튼튼히 자라왔습니다. 지난해 기준 한 해 동안 무려 1억 4천만 병에 달하는 와인이 생산됐습니다.
이곳에 일궈진 포도밭 면적만 401㎢에 달합니다. 축구장 6만 2천 개 규모입니다. 허란산 동쪽에 자리 잡은 와이너리만 어느덧 130곳이 넘었습니다.
해마다 최대 1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는 허둥(賀東)와이너리가 대표적입니다. 이곳을 경영하는 궁제(?傑)는 원래 광산업 종사자였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광물 대신 세월이 흐를수록 자라나는 포도에 매력을 느껴 와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소믈리에를 고용하고 와인 생산 작업을 자동화했습니다. 최근엔 저온 발효를 통해 더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허란산 자락에 터를 잡은 샤무(夏木)와이너리는 자연 발효에 기반을 둔 '내추럴 와인'을 특화했습니다.
명문 칭화대를 졸업한 건축가이기도 한 장파이(張湃)는 전공을 살려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와인 저장고를 설계했습니다. 또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업으로 포도를 키우고 있습니다.
장파이는 이를 중국 전통의 자연농업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 와인은 자연스럽고도 가장 사실적인 자연의 향기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3대째 와인사업을 경영 중인 화하오(華昊)와이너리는 마르셀란 품종으로 양조한 와인에 강점이 있습니다. 마르셀란은 프랑스에서 카베르네 소비뇽과 그르나슈 품종을 교배해 만들었는데, 오히려 중국의 '떼루아'와 잘 어울린다는 판단에섭니다.
화하오 와이너리 대표의 아들인 청이어우(程譯歐)는 “마르셀란 품종은 마치 '공주' 같은 우아함을 가졌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어 “마르셀란 와인을 세계 최고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00년생인 청이어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화하오 와이너리를 이끌기 위해 유럽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와이너리들의 노력에 힘입어 '닝샤 와인'은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고 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과 독일 베를린 등 국제 와인 대회에서 1,700개가 넘는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허란산 일대의 와인 브랜드 가치도 330억 위안(약 6조 1,845억 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유수의 와인업체들도 닝샤에 주목했습니다. 세계 최대 샴페인 제조사 모엣샹동 역시 10년 전부터 닝샤에 자체 와이너리를 열고 와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호주의 대표적인 와인 브랜드 펜폴즈와 시바시 리갈로 유명한 주류업체 페르노리카 등도 닝샤에 진출했습니다.
중국은 닝샤를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산지 보르도처럼 키우겠다는 계획입니다. 보르도처럼 '마법의 위도'로 불리는 북위 38도에 위치해 있고 모래와 자갈, 석회질이 섞인 토양도 '보라색 황금'을 키우는 데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닝샤후이족자치구정부는 내년까지 포도밭 규모를 서울시 면적만 한 606㎢로 늘리고 연간 3억 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까지 전 과정을 스마트화했습니다. 포도밭의 토양과 기온, 습도 등 환경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양조장에서는 숙성과 병입, 라벨 부착까지 모든 방면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앞서 두 차례나 이곳을 찾은 뒤 “와인 사업이 나아가는 길은 옳다”면서 닝샤의 '와인굴기'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외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닝샤 와인을 선물하면서 외교 전면에도 내세웠습니다.
다만, 국제 경쟁력 제고는 닝샤 와인이 직면한 과제 거리입니다. 단순히 내수 시장을 넘어 전 세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선 넘어야 할 벽이 아직 많습니다.
역사가 짧은 만큼 브랜드 인지도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전통적인 유럽 와인에 비해 크게 떨어집니다. 가격 면에서도 칠레와 뉴질랜드 등 신대륙 와인과 비교하면 딱히 나은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다 중국 내 경제 둔화로 소비가 줄어들고 호주 등 주요 와인 산지의 수입 관세가 줄어들면서 중국 내 시장에서도 입지가 탄탄하지 않습니다.
와인 숙성의 핵심인 오크통 역시 전량을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개선점으로 꼽힙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몰라도 되는데 알고 나면 '썰' 풀기 좋은 지식 한 토막. 기상천외한 이웃나라 중국,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도성 특파원이 전합니다. "
“와이너리가 있는 곳에 길이 생긴다”
누런 황무지에서 푸른 포도밭으로 천지개벽한 허란산(賀蘭山) 동쪽 기슭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중국 중부 닝샤후이족자치구에 위치한 이곳에선 중국을 대표하는 '닝샤 와인'의 역사가 40년째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중국 중부 닝샤후이족자치구와 네이멍구자치구 사이 남북으로 300km 뻗은 허란산의 동쪽 기슭은 광업으로 먹고살던 지역입니다. 불과 1970년대까지 모래와 자갈을 캐며 살았죠.
하지만, '신의 물방울'이 모든 걸 바꿔놨습니다. 척박한 기후는 오히려 포도알을 살찌우는 천혜의 환경이었던 겁니다.
연간 누적 3천 시간 넘게 햇볕이 내리쬐면서도 비는 고작 200mm도 내리지 않습니다. 해발고도는 1,100m대에 일교차가 15도나 됩니다.
모든 조건이 와인용 포도를 키우는 데 딱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여기에 서쪽의 허란산이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동쪽으론 황허가 젖줄이 되어줍니다.
1984년 처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닝샤 와인'은 40년에 걸쳐 튼튼히 자라왔습니다. 지난해 기준 한 해 동안 무려 1억 4천만 병에 달하는 와인이 생산됐습니다.
이곳에 일궈진 포도밭 면적만 401㎢에 달합니다. 축구장 6만 2천 개 규모입니다. 허란산 동쪽에 자리 잡은 와이너리만 어느덧 130곳이 넘었습니다.
해마다 최대 1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는 허둥(賀東)와이너리가 대표적입니다. 이곳을 경영하는 궁제(?傑)는 원래 광산업 종사자였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광물 대신 세월이 흐를수록 자라나는 포도에 매력을 느껴 와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소믈리에를 고용하고 와인 생산 작업을 자동화했습니다. 최근엔 저온 발효를 통해 더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허란산 자락에 터를 잡은 샤무(夏木)와이너리는 자연 발효에 기반을 둔 '내추럴 와인'을 특화했습니다.
명문 칭화대를 졸업한 건축가이기도 한 장파이(張湃)는 전공을 살려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와인 저장고를 설계했습니다. 또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업으로 포도를 키우고 있습니다.
장파이는 이를 중국 전통의 자연농업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 와인은 자연스럽고도 가장 사실적인 자연의 향기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3대째 와인사업을 경영 중인 화하오(華昊)와이너리는 마르셀란 품종으로 양조한 와인에 강점이 있습니다. 마르셀란은 프랑스에서 카베르네 소비뇽과 그르나슈 품종을 교배해 만들었는데, 오히려 중국의 '떼루아'와 잘 어울린다는 판단에섭니다.
화하오 와이너리 대표의 아들인 청이어우(程譯歐)는 “마르셀란 품종은 마치 '공주' 같은 우아함을 가졌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어 “마르셀란 와인을 세계 최고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00년생인 청이어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화하오 와이너리를 이끌기 위해 유럽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와이너리들의 노력에 힘입어 '닝샤 와인'은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고 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과 독일 베를린 등 국제 와인 대회에서 1,700개가 넘는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허란산 일대의 와인 브랜드 가치도 330억 위안(약 6조 1,845억 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유수의 와인업체들도 닝샤에 주목했습니다. 세계 최대 샴페인 제조사 모엣샹동 역시 10년 전부터 닝샤에 자체 와이너리를 열고 와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호주의 대표적인 와인 브랜드 펜폴즈와 시바시 리갈로 유명한 주류업체 페르노리카 등도 닝샤에 진출했습니다.
중국은 닝샤를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산지 보르도처럼 키우겠다는 계획입니다. 보르도처럼 '마법의 위도'로 불리는 북위 38도에 위치해 있고 모래와 자갈, 석회질이 섞인 토양도 '보라색 황금'을 키우는 데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닝샤후이족자치구정부는 내년까지 포도밭 규모를 서울시 면적만 한 606㎢로 늘리고 연간 3억 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까지 전 과정을 스마트화했습니다. 포도밭의 토양과 기온, 습도 등 환경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양조장에서는 숙성과 병입, 라벨 부착까지 모든 방면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앞서 두 차례나 이곳을 찾은 뒤 “와인 사업이 나아가는 길은 옳다”면서 닝샤의 '와인굴기'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외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닝샤 와인을 선물하면서 외교 전면에도 내세웠습니다.
다만, 국제 경쟁력 제고는 닝샤 와인이 직면한 과제 거리입니다. 단순히 내수 시장을 넘어 전 세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선 넘어야 할 벽이 아직 많습니다.
역사가 짧은 만큼 브랜드 인지도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전통적인 유럽 와인에 비해 크게 떨어집니다. 가격 면에서도 칠레와 뉴질랜드 등 신대륙 와인과 비교하면 딱히 나은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다 중국 내 경제 둔화로 소비가 줄어들고 호주 등 주요 와인 산지의 수입 관세가 줄어들면서 중국 내 시장에서도 입지가 탄탄하지 않습니다.
와인 숙성의 핵심인 오크통 역시 전량을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개선점으로 꼽힙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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