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열풍 왜···그만큼 힘든 분이 많다는 거죠”
출간 1주년···200쇄· 45만부 돌파
일본·중국·대만·베트남에 판권 계약도
"독자 반응 감사하나 마음 무거워”
고통···인생의 배 균형잡는 바닥짐
말년에 행복한 쇼펜하우어는 ‘현실론자’
“독자들을 직접 만나보니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자신만 힘든 게 아니라 다들 힘들게 살고, 인생 자체도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하니 위안을 삼는 것이죠. 쇼펜하우어(1788~1860) 열풍은 그만큼 삶이 힘들다는 분이 많다는 의미라고 봐야겠죠. 책을 읽은 독자에게 너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지난해 가을 때아닌 철학 열풍과 쇼펜하우어 신드롬을 낳은 화제작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저자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를 발간 1주년(9월 6일)을 앞두고 서울경제신문 회의실에서 만났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은 지난달 200쇄를 발행해 판매 부수 45만 부를 넘었다고 한다. 1쇄 완판도 어렵다는 철학 교양서가 부동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것은 극히 이례적 일. 발간 1주년을 앞두고 일본과 중국·대만·베트남에 판권 수출 계약을 맺어 해외판이 곧 나올 예정이다.
“따지고 보면 책 내용은 뻔한 스토리예요. ‘자존감을 가져라, 눈치 보지 마라,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이고 이런 류의 책은 무수히 많잖아요. 이렇게 잘 팔릴지 상상도 못했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출간 이후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 교수는 출판사의 출간 제의에 주저했다고 했다. “학자가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지 에세이류를 쓰는 것을 경원시하는 학계 풍토도 있지만 예전에 쓴 두 권의 철학 교양서가 거의 팔리지 않았던 경험도 있습니다. 잘 아는 선배가 상을 당해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었고요. 한동안 잠수를 타서 출판사가 포기할 줄 알았는데··· 그때 저와 출판사가 포기했다면 지금의 제가 없겠죠.”
책은 2016년 자신이 쓴 논문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을 쉽게 풀어 쓴 교양서라고 했다. 강 교수는 “원래 출간 의도는 논문 제목처럼 행복론이라는 처세술을 다루는 데 있었다”면서 “쇼펜하우어의 ‘소극적 행복론’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나온 ‘왜 삶이 고통스러운가’를 설명한 대목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통에 대한 관점이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지적 오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고통은 아주 잘 느낍니다. 주변 사람들이 잘 대해주는 것은 몰라도 관계가 틀어지면 죽도록 미워합니다. 이렇듯 행복은 소극적이고, 고통은 적극적인 성질을 지녔죠.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줄이는 게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은 욕망 때문이라고 한다. “욕망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이 납니다. 절대 채워질 수 없죠. 욕망이 충족되면 무료해집니다. 예컨대 배가 고파도 괴롭지만 반대로 너무 불러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권태를 오간다고 해요.”
‘왜 마흔인가’를 물었다. “쇼펜하우어는 당대의 거장 헤겔에 가려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다 40대 중반부터 뒤늦게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흔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했어요. 40대까지는 본문, 그 이후 30년은 본문의 주석이라고 생각했지요. 지방의 한 독서 모임에서 강연할 때였는데 칠순 할머니께서 ‘30년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손을 잡아주시더라고요. 마흔은 인생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기이자 삶의 고통을 인식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강 교수는 후속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는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철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며 “두 사람을 비교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교양서를 쓴다고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며 “연구 역량은 나름 괜찮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라는 세평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쇼펜하우어의 삶은 생각과 행동이 달라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이라거나 ‘세상사는 지옥’이라고 말했지만 일흔두 살까지 오래 살았습니다. 죽음을 말하되 음식을 가려 먹는 미식가였고 남녀 관계를 부정적으로 묘사했지만 유부녀를 포함해 여러 여자를 사귀었죠. ‘오래 살아야 삶이 짧은 줄 알고 늙어야 인생을 안다’고도 했어요. 고통은 인생이라는 배의 균형을 잡는 바닥짐 같은 것입니다. 무거우면 가라앉고 가벼우면 뒤집히죠. 그래서 어느 정도의 고통과 근심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쇼펜하우어가 현실주의자 또는 긍정주의자라고 봅니다.”
‘삶이 괴로운’ 독자에게 전할 메시지를 부탁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비관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도 말년에 빛을 발했고 누구보다 행복한 말년을 보냈잖습니까. 미래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속단하지 않아야 해요. 젊은이들이 흔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쇼펜하우어가 살아 돌아온다면 이렇게 묻고 싶어요. ‘당신 인생이 이렇게 풀릴 줄 알았느냐’고. 누가 알겠어요. ‘젊었을 때 한 말이 틀렸다’고 말 할지요.”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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