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일 칼럼] 공정한 것은 균등주의가 아니라 시장이다

여론독자부 2024. 8. 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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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경제]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경제 10대 대국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인구가 5000만 명을 넘으면서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국가는 우리를 포함해 손으로 꼽을 수준이다. 게다가 K팝·K푸드·K뷰티 등 K컬처도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리는 명실상부한 문화 선진국으로도 도약했다. 돌이켜 보면 80년 전까지도 우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있었고, 전쟁 폐허에서 수많은 전쟁 고아들이 미군에게 구걸하던 비참한 현실도 불과 70년 전이었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빠르게 최빈국에서 부강국으로 성장한 사례는 없으며, 그래선지 많은 개도국들이 우리 경험을 배우고자 학자와 공무원을 파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였기에 가능했다. 그 중요성은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선택한 북한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도 중요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리더십이 모자라서 북한이 경제발전을 못한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라는 발판이 대한민국 성장의 핵심 전제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폄훼하려는 주장이 적잖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주장의 하나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기는 공짜인데 없어도 될 다이아몬드는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 모순이란다.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시장의 성과는 슬쩍 가려져 있다. 바로 다이아몬드는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성과다. 비싸면 비쌀수록 다이아몬드 생산과 유통은 확대되고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난다. 아무 것도 아닌 돌조각이 좋다는 사람들에게 수억 원을 받고 팔 수 있으면 다이아몬드 산업은 그만큼 많은 근로자들을 채용할 수 있고, 땀 흘려 번 돈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가구도 늘어난다. 다이아몬드는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수 억 원을 내서라도 그 돌조각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비싼 것이고, 비싼 만큼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를 반영할 뿐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높은 가격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시장 원리를 간과하니까 모순처럼 보일 뿐이다.

또 다른 주장은 시장은 불공정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시장 원리는 사실 단순하다. 잘하는 사람에게 더 높은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소비자들을 더 만족시킨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은 오히려 가장 공정하고 도덕적이다. 저질 제품을 비싸게 팔아 소비자를 기만하는 이는 절대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만 지속적으로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소비자 만족에 따라 보상이 정해지기 때문에 모두의 보상이 동일할 수는 없고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격차는 좋은 불평등이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고, 그런 노력이 혁신과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물론 반독점·교육·사회정책을 통해 비합리적인 가격과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그릇되게 폄훼하며 그런 정책들이 선을 넘어 균등주의로 비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성과에 따른 보상이라는 원리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는 힘을 잃고 우리의 성장 동력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균등주의를 공정으로 호도하는 포퓰리즘이 스며들었다. 균형발전과 같은 정치화된 모토가 그러하다. 진정한 균형발전이란 선두 주자는 최대한 빨리 뛸 수 있고 뒤처진 주자는 이를 빠르게 따라잡으려 스스로 노력하는 여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러기에 모든 주자들의 노력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균등주의는 앞선 주자의 발목을 잡는데 더 주력한다. 결국은 동반 추락으로 갈 뿐인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뛰어난 선수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특혜라고 폄훼하는 관행, 대학 등록금에 대한 일률적 규제, 전 국민이 25만 원씩 나눠 갖자는 주장 모두 다르지 않다. 불평등 통계로 세계적 유명세를 탔던 토마 피케티도 언젠가부터 언론이나 학계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자본 소득세를 대폭 올려 소모성 지출에 써야 한다며 균등주의에 집착했던 탓이 아닐까?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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