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과함은 불공정을 낳는다

박재범 경제부장 2024. 8. 20.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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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억원의 빚보증은 한달 뒤 정부의 '50조원+α(알파)'로 막게 된다.

한국은행, 5대 금융지주 등이 지원한 유동성을 포함하면 천문학적 규모다.

디딤돌 대출, 신생아 대출 등을 통해 착한 정부를 경험한 시장은 DSR 연기를 또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

7억~8억원대 아파트가 한두달새 1억~2억원 남짓 오르며 대출 불가 대상이 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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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9월28일. 강원도는 레고랜드 개발을 책임졌던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 회생을 신청한다. 김진태 강원지사의 '과감한' 결단은 채권 시장을 뒤흔든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다.

2050억원의 빚보증은 한달 뒤 정부의 '50조원+α(알파)'로 막게 된다. 한국은행, 5대 금융지주 등이 지원한 유동성을 포함하면 천문학적 규모다.

후유증은 여전하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은 연명 치료하듯. 아직도 정리중이다. PF 시장 정상화를 위해 꼬인 실타래를 푸는 과정도 만만찮다.

다 아는 교훈을 한번더 깨닫는 데 참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교훈은 새로운 게 아니다. 늘 그렇듯 금융 시장 신뢰의 중요성이다. 믿음이 흔들리면 시장은 망가진다.

몰랐던 게 아니다. 말 한마디, 결정 하나가 연쇄 폭발을 일으킬 만큼 시장은 불안했는데 정부는 안이했다. 지방 공기업의 문제, 작은 PF 사업장의 문제 등으로 쉽게 넘겼다. 'F4(Finance4)회의'에서 모든 현안을 따져보게 된 계기도 레고랜드 사태다. 그리고 과함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 'F4회의'는 경제부총리, 한국은행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 등이 비공개로 정책현안을 논의하는 비공식 협의체다. 주1회 회의에서 온갖 데이터와 정보를 공유하고 조율하다보니 잡음이 없다.

6월말 이뤄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연기는 조율의 결과다. 부동산 등 특정한 정책 목표를 위한 노림수가 아니다. 7월초로 예정됐던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만 고려했다.

자영업자 대책 발표를 앞두고 대출을 조이는 정책을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문제의식에 모두 동의했다. 이견없이 두 달 연기로 결론났다.

정부 인사는 "순수했던 결정"이라고 돌이켰다. 조율을 거친 '간단한' 결정은 부동산 시장을 흔든다. '고작 2달'이 불러온 파장은 이제 시작이다. 시장은 '2개월'보다 '연기'에 주목하며 '부동산 부양'으로 인식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답답해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반응한다. 디딤돌 대출, 신생아 대출 등을 통해 착한 정부를 경험한 시장은 DSR 연기를 또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

금리 인하 기대감과 맞물려 서울을 비롯 수도권 주택 시장엔 불이 붙었다. 계산기를 두드리던 실수요자들은 한숨을 내쉰다. 7억~8억원대 아파트가 한두달새 1억~2억원 남짓 오르며 대출 불가 대상이 된 때문이다. 아름다운 조율·조정은 그렇게 서민의 꿈을 지운다.

# 회의 테이블엔 금리와 가계대출, 부동산이 함께 오른다. 모두가 다 아는 문제들이다. 금리 방향성은 정해져 있다. 글로벌 금융의 흐름 속 홀로 버틸 수는 없다. 거시 환경도 그렇다. 물가는 잡혔고 내수는 부진하다. 헌데 가계대출, 부동산이 골칫거리다.

풀 수 없는 3차 방정식이기에 중앙은행(기준금리)·정부(주택공급)·금융당국(금리 압박+대출 규제)이 각 섹터별 답을 써내고 인정해주는 쪽으로 조율한다. 의도된 엇박자이자 조율된 방치다.

금리인상기에 시중은행은 금리 인상 자제를 요구받았다. 서민층의 고통을 경감해줘야 한다는 명분, 은행이 돈을 과하게 번다는 정서 등에 기댔다.

이젠 반대다. 시장 금리가 떨어지는 데도 시중은행은 반대로 가야 한다. 올리고 또 올린다. 착한 척 했던 정책금융 금리도 예외가 아니다. 명분은 '대출 관리'외 딱히 없다. 당국의 개입에 볼멘소리하던 은행은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을 보며 오히려 반긴다.

정부는 가격 변수에 개입하면서 두려움도 없다. 외환위기 이후 사라졌던 금리 개입이 2024년, 당당히 진행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신용할당이라는 게 있었다. 은행별로 여신한도를 정해주면서 종속적으로 금리를 결정했다.

지금은 금리를 정해주면서 여신 한도를 결정하는 '기형적' 개입이다. 가계대출과 부동산이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것처럼. 꼼꼼히 모든 현안을 논의하고 조율하다보니 가격 결정까지 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것은 아닌지.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정의도 불공정이 돼 버린다.


박재범 경제부장 swal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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