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연극… 만년 생활苦 [무너지는 지역 연극②]
올 5월까지 서울서 836건 공연 때, 경기·인천 94건… 티켓 수입 등도 밀려
전문가 “지자체 지원, 생색내기 그쳐... 창작활동 위한 기본 환경 조성 시급”
#2장: 배고픈 예술인이지만 “배고픈 예술을 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코로나19로 공연장 문이 잠겨도 무대를 지키고, OTT 확대로 객석이 비어도 관객을 기다렸다. 나는 굶을지언정 나의 예술은 배불렀으면 하는 바람에서 연극인들은 연극을 가꿔왔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연극은 하염없이 흔들린다. 특히 지역 연극이 심각하다. 공연시장 전반은 성장하는데 연극시장은 정체된 지금, 경기도에 초점을 맞춰 지역 연극의 현실을 살펴봤다.
■ part1. 서울 10편 공연할 때 경기·인천 달랑 ‘1건’
19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1~5월 경기‧인천권에서 진행된 연극 공연은 총 94건이다. 코로나19 펜데믹 후 ‘활발히’ 공연 중인 상황인데도 100건이 채 안 된다.
이는 서울권(836건)의 11.2%에 그치는 수준이다. 비수도권인 경상권(180건)과 비교해도 절반(52%) 정도다.
그나마 대전·세종·충청권의 연극 공연건수가 70건으로 경기‧인천권과 비슷했지만, 지역 간의 인구 차이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경기·인천권 연극이 저조하게 공연 중임을 알 수 있다.
‘개막 편수’, ‘티켓 판매건수’, ‘티켓 판매수입’ 또한 경기·인천권은 서울권에 한참 뒤처졌다.
같은 기간 서울권에서 개막한 연극은 493개로 전국의 61.1%를 차지했다. 다음은 경상권이 123개로 15.2%, 경기·인천권이 86개로 10.7%였다.
서울권에서 팔린 연극 티켓 건수는 전국 연극의 78.9%(82만7천917장)였고, 그로 인한 수입 또한 213억8천424만5천만원에 달했다. 경상권은 전국의 8.9%(9만3천322장)만큼 티켓을 팔고, 20억5천861억1천만원의 수입을 거뒀다.
이때 경기·인천권의 티켓 판매건수는 단 5.18%(5만4천323장)에 불과했다. 수입도 11억922만4천만원으로 서울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수도권이라는 위치와 전국 최다인 인구 비중 등을 고려하면 타 지역에 비해 경기·인천권 연극 입지가 낮다고 풀이된다.
■ part2. “연극 수입은 月41만원”
‘인기 없는 연극’은 ‘저조한 수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8년과 2021년에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축, 무용, 만화를 뺀 모든 분야에서 예술인의 수입이 감소했다.
그 중에서 특히 감소세가 두드러진 분야가 바로 ‘연극’이다. 구체적으로 2017년 평균 수입(연극인 가구 총수입) 4천82만원에서 2020년 평균 수입 3천147만원으로 22.9% 떨어졌다.
‘음악(-18.8%)’, ‘영화(-15.3%)’, ‘국악(-14.6%)’, ‘대중음악(-12.5%)’ 등의 수입도 줄었지만, 현장성이 무엇보다 큰 연극계가 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을 입은 셈이다.
이 여파로 한 달 수입이 100만원 미만일 것으로 추산되는 가구(총수입 1천만원 미만인 가구) 역시 ‘연극계’가 3.1%(2017년)에서 6.7%(2020년)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음악’이 1.5%에서 2.9%로 1.4%p 증가하고, ‘국악’이 1.7%에서 1.2%로 0.5%p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연극계에서 유독 저소득 가구가 급증했다.
결과적으로 연극 분야 종사자의 연간 수입(연극인 개인 예술활동 수입)은 2017년 1천891만원에서 2020년 491만원으로 74% 떨어졌다. 연극인의 월급이 41만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극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겸업 연극인 비율에 대해서는 정확히 조사된 바 없지만, 연극인들은 “겸업을 안 하는 연극인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겸업하는 연극인의 58.1%가 일용직·임시직 등의 불안정한 일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연극인들이 겸업하는 이유의 78.3%는 예술 활동에서 낮거나 불안정한 소득 때문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경기·인천 지역 연극계는 타 지역에 비해 공연 건수도, 수입도 많지 않다 보니 더 열악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북부권의 A극단 대표는 “저 역시 야간에 새벽 배송 일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연극인이지만 ‘연극이 먼저냐, 생활이 먼저냐’ 하는 문제에서 무조건 연극이 먼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생활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경기남부권의 B극단 관계자도 “지역 연극배우들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연극판을 많이들 떠난다. 그렇다 보니 지역 연극계가 아마추어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연극만 하려는 연극인들은 서울로 떠나버린다”고 말했다.
■ part3. 한정적 지원 없애고, 대중적 예술 더해야
경기문화재단에 따르면 올해 기준 경기도 연극인은 580여명이며, 극단은 130여개 존재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새로운 연극인’이 점점 줄어들었는데 그나마 올해는 선방하고 있는 편이다.
경기도 내 신인 연극인은 2021년 382명, 2022년 120명, 2023년 35명까지 떨어졌고 올해(6월 기준) 43명으로 소폭 증가세를 보였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무대가 열린 영향과 함께 ‘경기도 예술인 기회소득’ 등을 받기 위해 연극인으로 등록한 인원이 늘어나는 등 상황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신인 연극인도, 기존 연극인도 상당수가 ‘생활전선’에 뛰어든 터라, 지역 연극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건표 연극평론가 겸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지역 연극이 사실상 위기에 처했다”면서 “첫째는 지자체의 연극인 지원이 보편적이지 못하고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순수예술을 하는 연극인 중 90% 가량이 지원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이를테면 순수예술에 대한 심의나 경쟁 체제, 지원기준 등이 어렵게 갖춰져 있어서 지역예술인들이 지자체의 지원을 피부로 와 닿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경기도 내에서 지금처럼 예술인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것보다도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도내 연극계 또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순수예술로 대중에게 좀 더 다가서기 위해 대중성을 갖추는 노력 등이 더해져야 지역 연극도 소멸하지 않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part4. 안산, 예술인 5명 중 1명이 연극인…연극단체 비율 1위는 양주
한편 경기도 예술인 중 '연극인'이 가장 많은 지역은 안산으로 나타났다.
경기예술인지원센터에 따르면 예술인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도내 예술인은 지난 6월18일 기준 6천880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예술장르는 연극을 포함한 음악, 미술, 문학, 사진 등 13개다.
이 중 연극인은 8.43%(579명)이었다. 경기도 예술인 100명 중 8명만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군별로 보면 안산시 예술인 중 20.3%가, 과천시 예술인 중 17.7%가, 하남시 예술인 중 12.6%가 '연극'을 하며 상위 1~3위를 차지했다.
반면 여주시 예술인은 1.8%만이 연극을 했고, 안성시(4.8%)와 군포시(5%)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예술단체별로는 상황이 달랐다.
양주시에서 활동하는 전체 예술단체의 33.3%는 '연극단체'로 도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광명시는 전체 예술단체 가운데 27.3%가, 과천시와 연천군은 각각 25%가 연극단체로 분류됐다.
이들 지역 예술단체 4곳 중 1곳 이상이 연극을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안성시에는 연극단체가 없었다. 이어 시흥시 5.9%, 용인시 및 여주시 각 7.1%, 수원시 8.1%만이 연극단체로 집계되며 타 지역에 비해 미미한 수치를 보였다.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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