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 ‘핫플’ 양양서 마신 수입맥주병, 묻어야 하는 거 아세요?
지난 14일 오전 ‘엠제트(MZ) 세대의 서핑 성지’로 유명한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해수욕장. 검은색 전신 슈트를 입은 서퍼들이 한여름의 태양 아래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양양은 인구가 2만7천여명에 불과한 작은 지자체지만 서핑 등 새로운 해변 문화의 성지로 자리 잡으면서 엠제트 세대 방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탓에 이들이 버리고 간 수입 맥주와 와인, 위스키 등과 같은 수입 주류 공병이 연간 20만병 이상 쏟아져 나와 몸살을 앓고 있다.
수입 주류 대부분은 공병 보증금 반환제 대상이 아니다. 색깔이 다양하고 원재료도 국내와 달라 재활용되지 않고 불연성 쓰레기로 분류돼, 전량 매립되고 있다. 박성환 양양군청 자원순환팀장은 “하루 평균 불연성 매립 쓰레기가 20톤 정도 발생하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수입 주류 공병이고 요즘 같은 휴가철에는 최대 3배까지 늘어난다. 수입 주류 공병은 상대적으로 부피가 크다 보니 현재 운영 중인 매립장의 사용 연한이 급격히 줄고 있다. 10년 사용 연한인 매립장을 한곳 더 만들려면 150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양양군과 지역 주민들이 협업해 지난해 5월 인구해수욕장에 ‘새활용센터’를 만들었다. 그동안 매립 등의 방법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수입 주류 공병을 생활소품 등으로 새롭게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곳이다. 지자체가 국비 등을 끌어와 시설과 장비 등 기반을 마련했고,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주민들은 ‘양양 새활용주식회사’를 설립해 센터를 위탁운영하고 있다.
새활용센터는 서핑숍과 게스트하우스, 맛집, 카페, 클럽 등이 몰려 있는 핫플인 ‘양리단길’ 바로 뒤쪽에 1층짜리 조립식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이날 찾은 새활용센터는 각종 수입 맥주와 와인, 위스키 등을 담았던 공병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또 공병으로 만든 화분과 풍경, 유리컵, 접시, 향초받침 등과 같은 소품들도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자태를 뽐냈다.
이날 새활용센터의 교육실에서는 경기도 가평에서 서핑 체험을 하러 온 학생 20여명을 대상으로 유리병 재활용 교육이 한창이었다. 새활용센터 신윤경 팀장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등을 통해 국내에서 생산된 맥주병이나 소주병은 대부분 수거·재활용이 되고 있지만, 수입 주류 공병은 색깔과 원료 등이 다양해 재활용되지 못한 채 매립되고 있다”며 “매립된 공병은 자연 분해되기까지 플라스틱보다 최소 8배 이상인 40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인솔해 양양을 찾은 가평청소년문화의집 이다솜(31)씨는 “평소 와인이나 수입 병맥주를 먹으면 ‘유리’로 분류된 수거함에만 넣으면 재활용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전부 매립된다는 사실은 충격”이라고 말했다. 김나희(33)씨도 “요즘 들어 수입 맥주뿐 아니라 와인, 위스키 등의 소비가 큰 폭으로 늘고 있는데 재활용이 안 된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평북중학교 3학년 임승연 학생은 “유명한 서핑 해변이라고 해서 쓰레기도 없고 깨끗한 줄 알았는데, 오전에 쓰레기 줍기 체험을 해보니 길거리 곳곳에 수입 맥주나 와인 등과 같은 공병 쓰레기가 널려 있어서 놀랐다. 수입 주류 공병도 매립하지 말고 소주·맥주병처럼 친환경적으로 처리할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새활용센터는 주민들이 버려진 와인병 등을 가지고 오면 병 하나당 150원씩 지급하는 양양군만의 ‘수입 주류 공병 보증금 반환 시스템’을 마련했다. 센터는 이렇게 모은 공병의 상표를 제거하고 세척, 절단, 절단면 연마, 초음파 소독 등의 과정을 거쳐 화분과 풍경, 유리컵, 접시, 향초받침 등과 같은 소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또 관광객 등을 상대로 공병 새활용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인구해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주워 오면 수입 주류 공병을 새활용해서 만든 유리 귀걸이 등을 선물하는 환경보호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전옥랑 새활용주식회사 대표는 “식당이나 숙박업소 등 주민들이 가져오는 빈 병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연간 1인당 100병으로 제한을 뒀다. 보상받지 않아도 좋으니 땅에 묻지 말고 새활용해달라며 가져오는 주민들도 많다. 급증하는 수입 주류 소비에 맞춰 공병을 새활용·재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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