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당신은 왜 경기도 무대에 남았나 [무너지는 지역 연극①]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문 닫는 공연장, 소멸하는 극단, 텅 빈 객석.
"이를테면 대구에 지역 연극이 있어요. 부산 연극, 창원 연극, 진도 연극도 있고요. 그런데 경기 연극은 참 이상해요. 제가 애써 '의정부 연극'이라 표현한다 해도 그 단어가 웃기게 들려요. 과연 경기 연극과 대학로 연극의 변별력이 얼마나 있느냐는 거죠. 오히려 수도권과 멀수록 '지역 연극'은 잘 돼요. 경기도는 서울 문화에 가까우니까 '우리 고장의 예술판'이 형성되기 힘들거든요. 의정부 사람들이 여기서 연극 보겠어요? 40분만 나가면 서울인데."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가까워 예술판 형성 어렵지만... 본질에 대한 깊이 추구 이뤄져야”
문 닫는 공연장, 소멸하는 극단, 텅 빈 객석. 연극계가 흔들린다. 연기·조명·의상 등 각종 예술장르의 총망라였는데 이젠 ‘연극’ 자체가 리미티드 런(limited run·기간 한정공연)이다. 경기도 연극판은 어떨까. ‘대학로’와 가깝지만 ‘공연메카’는 아닌 이곳에서 경기도 연극인들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나. 지역 연극을 통해 문화예술계의 현실과 이상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인터뷰 줌-in 연출가 겸 배우 극단 허리 대표 유준식
“고향 그린 연극… 내 꿈이고 고집이었다”
#1장: 어둠이 내린 소공연장. 검은 커튼이 양옆으로 펼쳐지면 비로소 공연의 막이 열린다. 웅성거리던 객석의 숨을 멈춰 세우고 한 남성이 고요히 무대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무채색 옷을 입은 연출가 겸 배우, 극단 허리 대표인 유준식(63·의정부)이다.
"지역 연극계 어때요?" 묻자 준식은 "대학로는 청과물시장, 지역은 과수원"이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에게 되도록 비싼 값에 잘 팔려는 '시장', 그리고 판매의 본질이 되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밭' 정도의 차이가 있단다.
시장 중심 사회에서 농사는 소홀해졌다는 게 그의 독백이다. 상업도, 비상업도 무엇 하나 잘못된 건 없다. 다만 그는 "본질에 대한 깊이 추구가 지역 예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연극 현장은 과연 '지역' 연극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까. 짧은 상념에 빠진 준식은 10여초 후 천천히 입을 뗐다.
"이를테면 대구에 지역 연극이 있어요. 부산 연극, 창원 연극, 진도 연극도 있고요. 그런데 경기 연극은 참 이상해요. 제가 애써 '의정부 연극'이라 표현한다 해도 그 단어가 웃기게 들려요. 과연 경기 연극과 대학로 연극의 변별력이 얼마나 있느냐는 거죠. 오히려 수도권과 멀수록 '지역 연극'은 잘 돼요. 경기도는 서울 문화에 가까우니까 '우리 고장의 예술판'이 형성되기 힘들거든요. 의정부 사람들이 여기서 연극 보겠어요? 40분만 나가면 서울인데."
준식은 잠시 멈추더니 이내 힘을 실어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의정부 연극'이라는 고집을 부리는 거죠.”
1962년, 그가 태어났을 때 '이 땅'은 산골마을이었다. 의정부시 최동단에 위치해 한자로도 '산곡(山谷)동'이라 쓴다. 학교를 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는 길만 걸어서 30분. 그런데 그 정류장이 기지촌 가까이에 있었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행패를 무섭도록 실감나게 봐왔어요. 마을 할머니들도 미군만 보이면 다 도망가 빗장을 걸어 잠굴 정도였죠. 매일 헬기·장갑차 훈련 소음에 시달리는데, 예민한 청소년기에 얼마나 충격이었겠어요. 근데 학교를 가면 주한미군은 우리의 '우방'이래요. 현실과 교육 사이의 괴리감이 있었죠. 서울을 지켜주며 피해를 감수하는 지역, 분단을 강화하는 중심 도시. 그게 의정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그걸 연극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분단’, 그리고 ‘고향’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고 싶던 준식, 그게 경기도 연극계에 몸담게 된 이유이자 명분이었다.
문학·미술·음악·무용의 총체적 형태인 이 '밭'에서 가족과 '농사'를 꾸린 세월만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의 곁에는 연극기획자인 아내, 배우인 딸, 음악가인 아들이 함께한다.
대표적인 작품은 <만남>(1996년作)과 <환향>(2010년作)이다. 시골에서 순박하게 살고 있는 아이들을 이웃이 괴롭히는 내용, ‘환향년’ 등으로 불리우며 수모를 겪는 이들의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을 상징화하고, 의순공주 묘역 등을 담으며 지역색을 잔뜩 묻혔다.
"정치권력으로 풀어내면 ‘폭력’, 경제 논리로 풀어내면 ‘고용’, 감동의 힘으로 풀어내면 ‘문화’ 아니겠습니까. 저는 문화를 선택했죠. 지역 연극이 곧 기초예술이기 때문에, 그 뿌리가 단단해야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로 중앙예술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대학로건 어디건 예술 활동은 이어져야 하니까 저는 경기도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는 겁니다."
깊이 있는 지역만의 이야기를 문화로 승화하기 위해, 경기도 연극무대에 남아 있다는 그였다.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곽민규 PD rockmanias@kyeonggi.com
민경찬 PD kyungchan63@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낀 경기도’ 김동연호 핵심 국비 확보 걸림돌…道 살림에도 직격탄 예고
- 삼천리그룹, 임원인사 및 조직개편 단행
- 공천 개입 의혹 명태균·김영선 구속..."증거인멸 우려"
- 한국 축구, 북중미월드컵 亞 3차 예선서 파죽의 4연승
- “해방이다” 수험생들의 ‘수능 일탈’ 우려...올해는 잠잠하네 [2025 수능]
- "우리 집으로 가자" 광명서 초등생 유인한 50대 긴급체포
- [영상] “온 어린이가 행복하길”…경기일보‧초록우산, 제10회 경기나눔천사페스티벌 ‘산타원
- 성균관대 유지범 총장, 대만국립정치대학교에서 명예 교육학 박사학위 받아
- 어린이들에게 사랑 나눠요, 제10회 나눔천사 페스티벌 산타원정대 [포토뉴스]
- 이재명 “혜경아 사랑한다” vs 한동훈 “이 대표도 범행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