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긴 불황"…내수 얼어붙자 무너진 자영업
"15년 만에 가장 큰 소비 감소" "10년 만에 가장 높은 연체율"
자영업의 위기를 나타내는 지표가 쏟아지고 있다.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민간 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가 얼어붙은 탓이다. 다소 양호했던 고용시장마저 흔들리고 있다. 정부 대책에도 자영업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102)는 1년 전보다 2.9% 하락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분기(-4.5%) 이후 15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소비가 쪼그라들면서 자영업자들의 매출은 급감했고 자금 사정은 어려워졌다. 지난 5월 자영업자 은행 대출 연체율은 0.69%다. 2014년 11월(0.72%) 이후 9년 6개월 만의 최고치다.
어려워진 사업 형편으로 자영업자는 줄고 있다. 지난달 자영업자는 572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만2000명 감소했다. 자영업자 감소세는 6개월째다.
폐업한 이들은 구직시장으로 발을 돌렸다. 올해 상반기 기준 월평균 실업자(91만8000명) 중 지난 1년 사이 자영업자로 일했던 사람은 월평균 2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2만1000명)과 비교해 23.1% 늘었다.
내수 부진의 요인은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소비 위축이다. 기업들의 투자 역시 얼어붙었다. 그 여파로 양호했던 고용시장도 둔화 추세다. 지난달만 해도 건설업 취업자(전년동월 대비 -8만1000명)는 11년 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고 청년 취업자(-14만9000명)는 21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정부는 수출 증가가 내수 회복세를 견인할 것이라 보지만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 업종과 내수 간 연관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단 게 문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부터 내수 활성화, 지역투자 제고 방안 등 대책을 냈지만 약발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론 소상공인에 기금을 활용해 빚을 탕감하는 등 지원책까지 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 유동성을 키우고 소비를 뒷받침하는 게 방법이지만 이 또한 단기간에 내수를 회복시키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이 있다. 이르면 10월 금리인하가 현실화되더라도 시차가 적잖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다.
정부가 당장 내수를 위해 쓸만한 카드도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재정 씀씀이를 늘려 소비를 지원하기에도 부담이 크다. 올해도 세수 결손 등 재정 여력이 좋지 못한 탓이다.
내수가 30년 만에 가장 긴 불황을 겪고 있다. 정부가 머뭇거린 사이 자영업자들은 빚을 감당하지 못한 채 실업자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수출이 시차를 두고 온기를 불어넣어 내수를 지탱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간극은 커졌다. 선제적인 기준금리 인하와 건설경기를 부양할만한 여러 대책이 필요하단 제언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는 2분기 기준 전년동월 대비 2.9% 감소했다. 2022년 2분기 0.2% 감소한 이래 9개 분기 연속이다.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긴 불황이다.
내수의 다른 축인 투자도 불안하다. 지난해 2분기 설비투자지수(계절조정)는 1년 전보다 0.8% 하락했다. 3분기(-10.5%)와 4분기(-4.5%) 연이어 내려갔고 올해 1분기 0.6% 반등했지만 일시적 현상에 그쳤다. 한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수출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10개월 연속 반도체를 중심으로 회복하고 있는 것과 온도차가 크다.
정부의 대책은 충분치 않았단 지적이 나온다. 내수가 부진에 접어든 시점인 지난해 3월 기획재정부는 대책을 내놨다. 3만원 숙박비 쿠폰 제공 ,비자제도 개선을 통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을 골자로 한 내수활성화 대책이었다.
이어 올해 3월 내놓은 대책은 지역투자 제고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산업은행 등이 3000억원 규모 모(母)펀드를 조성하고 지방자치단체·민간이 함께 총 3조원 규모의 지역활성화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게 골자였다.
이어 6월 외국인 관광활성화 대책을 꺼냈다. 단체관광객 전자여행허가(K-ETA) 일괄신청 범위를 확대하고 크루즈 관광객 출입국 심사 시간 단축 등 여행 편의를 제고하는 내용이었다.
대책을 돌이켜 보면 재정투입은 최소화하되 제도 개선 중심으로 내수를 진작시키는 방안들이 주를 이뤘다.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결과적으론 지난달 소상공인을 직접 지원하는 대책까지 냈다. 새출발기금을 조성, 소상공인의 채무조정과 폐업자의 취업·재창업 연계하는 대책을 냈다.
그만큼 자영업 형편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내수를 제때 살리지 못한 탓에 이들이 자생할 수 있는 적기를 놓쳤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 전문가들은 금리인하의 필요성부터 거론한다. 최근 물가 안정세, 1300원대 원/달러 환율의 뉴노멀(새로운 기준) 현상 등을 고려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 금리를 낮추지 않더라도 한은이 선제적으로 인하해 내수를 회복시켜야 한단 주장이다.
내수진작만 생각하면 보다 공격적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자금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는 문제가 다른 걱정거리다.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의 부담이 발목을 잡는 셈이다.
건설경기 부양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최근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만으론 내수 연관 효과가 작기 때문이다. 내수를 되살릴 만한 가장 큰 산업은 건설업이다. 주택 공급으로 집값을 누를만한 요소인데다 단순 노동직을 비롯한 저소득층 일자리를 늘려 소비 진작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 IM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내수 회복 모멘텀이 강해지기 쉽지 않다"면서 "과거에 비해 제한적 수출 경기의 낙수효과,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무형자산 투자 사이클, 건설경기 부진 장기화 가능성이 내수 회복을 제한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세종=유재희 기자 ryu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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