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영·노이즈 홍종구 한상일·R.ef 이성욱, 흐린 기억 상상 속의 외침

이재훈 기자 2024. 8. 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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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대중음악 황금기 댄스 신 책임진 이들
현 K팝 댄스 신 초석 닦아
30일 마포문화재단 '어떤가요 #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 의기투합
현진영, 힙합·뉴잭스윙 선구자
노이즈, 하우스 국내 소개…프로듀서 속한 선진 시스템
R.ef, 비주얼 센터 갖추며 거대한 팬덤 보유
[서울=뉴시스] 노이즈 한상일·홍종구, 현진영, R.ef 이성욱. (사진 = 마포문화재단 제공) 2024.08.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현진영 '흐린 기억 속의 그대' 엉거주춤, 노이즈 '상상 속의 너' 호랑이춤, R.ef의 '고요 속의 외침' 격렬한 브레이크 댄스….

"두근 두근 쿵쿵 ♪♬" 지금 이 순간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영락없는 'X세대'. 이 세대가 대중문화를 향유한 1990년대는 가요계의 장르 황금기로 불린다. 댄스 음악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그리고 현진영·노이즈·R.ef가 있었다.

'슬픈 마네킹' '야한 여자' '흐린 기억 속의 그대' 현진영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에 앞서 1990년대를 연 주인공이다. 명실상부 국내 힙합·뉴잭스윙의 개척자다. 1990년 데뷔한 그로부터 초창기 우리 댄스 신(scene)의 계보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진영과 함께 활동한 댄서팀인 '와와' 1기와 2기가 각각 '클론'의 구준엽·강원래와 '듀스'의 이현도·김성재였다. '지누션'의 션이 와와 3기였다.

현진영의 영향은 현 K팝 아이돌 문화에도 통한다. 쇼트폼으로 번지고 있는 '현진스' 영상이 그 증거다.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 무대에 신드롬 걸그룹 '뉴진스'의 '슈퍼내추럴' 음원을 입힌 것인데, 두 노래는 뉴잭스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진영의 스텝은 절묘하게 '슈퍼내추럴'의 리듬과 맞아떨어진다.

노이즈는 어떤가. 이 팀은 2세대 K팝 대표 그룹 '빅뱅'의 원조격이다. 프로듀서가 그룹 안에 속해 있었다. 신승훈 '처음 그 느낌처럼' 김건모 '혼자만의 사랑' 등을 만든 톱 작곡가였던 프로듀서 천성일, 탁월한 보컬능력을 지녔던 홍종구 그리고 강남 댄스 신을 주름잡았던 한상일·김학규가 팀의 날개로 합류해 4인조로 출발했다. 1992년 '너에게 원한 건'을 타이틀곡으로 내건 1집 '사운드 쇼크'로 데뷔한 이 팀은 당시 국내 생소한 하우스, 레이브 등의 장르를 소개했다.

R.ef는 일렉트로니카라 할 수 있는 레이브를 앞세웠는데, 특히 유로비트처럼 빠른 박자를 기반으로 한 웅장한 곡에 격렬한 춤을 춰 인기를 누렸다. 1995년 내놓은 1집 '레이브 이펙트(Rave Effect)'는 타이틀곡 '고요 속의 외침'을 비롯해 '이별공식' '상심'까지 트리플 히트를 기록했다. 이듬해 내놓은 2집 '백 투 더 블랙' 타이틀곡 '찬란한 사랑'은 '상심 Ⅱ'라는 부제를 달아 일종의 연작 형식이었다. 메인 보컬 이성욱의 격정적인 내레이션은 당대 화제였다. 3인조의 안정적인 삼각편대도 이 팀의 인기 비결이었다. 이성욱은 현재 K팝 센터의 원조 격으로 홍콩 배우를 닮은 수려한 외모에 가창력까지 갖춰 팬덤을 보유했다. 성대현은 패셔니스타로 맵시 있는 춤선이 일품이었다. 나머지 멤버인 팀의 맏형 박철우는 1980년대 댄스 신을 주름잡은 이태원 문나이트 출신으로, 헤드스핀 등 고난도 댄스가 그의 몫이었다.

이처럼 1990년대 국내 댄스음악 르네상스를 연 이들이 뭉친다. 현진영, 노이즈 홍종구·한상일, R.ef 이성욱이 마포문화재단이 오는 30일 오후 7시30분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여는 'M 레트로 시리즈 어떤가요 #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을 통해 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이성욱, 한상일, 현진영, 홍종구. (사진 = 마포문화재단 제공) 2024.08.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서울마포음악창작소에서 만난 네 '댄스 영웅'은 서로 티격태격 만담 수준의 추억담을 꺼내 놓았다. 후드티를 입은 아티스트의 뒷모습이 이번 공연 포스터에 새겨졌는데 그것이 현진영이냐 아니냐 한참 토론을 하더니 지면에 옮기기 힘든 농담인지 진담인지 말들이 수없이 오갔다. 하지만 네 명 모두 음악에 대해서 만큼은 여전히 진지했고 명민했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일문일답.

-진영 씨가 입고 나왔던 후드티는 당시에 지금처럼 제대로 된 굿즈 상품으로 만들었으면 대박이 났을 겁니다. 지금 입고 계신 상의의 'X' 로고도 너무 예뻐요. (현진영은 X세대의 상징 'X'를 내세운 로고를 새긴 티셔츠 등을 최근 만들었다.)

"작년에 제 브랜드 '엑스 까라(X KARA)'를 론칭했을 때 홍보를 전혀 안 했어요. 소셜 미디어에 론칭했다는 소식 하나 올렸는데 2시간 만에 완판됐죠. 최근에도 홍보를 전혀 안 해요. 뉴진스 관련 화제('현진스' 영상)가 됐을 때도 많이 팔렸어요. MZ들이 현진영을 검색하다가 옷까지 연결이 된 거죠."(현진영)

현진영, 국내 힙합·뉴잭스윙 개척자

-노이즈 홍종구·한상일, R.ef 이성욱 씨랑 같이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이라는 타이틀로 함께 공연을 하십니다.

"저는 힙합 가수예요. 댄스 가수가 아닙니다. 얘네들(노이즈·R.ef) 하고는 다른 세계예요. 저는 힙합 가수인데 춤을 잘 춘 거거든요. 정봉('어떤가요' 기획자인 가수 이정봉)이 잘못한 거예요. 하하."(현진영)

[서울=뉴시스] 현진영. (사진 = 마포문화재단 제공) 2024.08.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진영 씨는 국내 '흑인 음악'을 알린 선구자이고 SM엔테테인먼트 브랜드를 맨 처음에 알린 'SM 1호 가수'이기도 하시잖아요.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님이 발탁하셨죠.

"이수만 선생님이 세세한 것까지 많이 챙겨주셨어요. 아이돌 트레이닝, 교육 커리큘럼을 전부 이 선생님이 만드신 거죠. SM 가수들 보면 기본적으로 춤추면서 노래해도 음정이나 발성이 안 흔들리잖아요. 아이돌이 연습생으로 들어오면 제가 했던 연습 방법을 그대로 하더라고요. 저도 SM을 나온 뒤 그걸 업그레이드시킨 '특수발성'을 만들어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죠."(현진영)

-국내 힙합, 뉴잭스윙의 개척자입니다.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발매한 1집 '뉴 댄스 1'은 '슬픈 마네킹'과 '야한 여자'가 실린 명반인데, 이들 장르를 알렸죠.

"당시 인터뷰할 때 장르는 '뉴잭스윙, 힙합입니다'라고 소개하면 기자님들이 써주지 않으셨어요. 그 장르에 대해 모르니까 당연히 그렇죠. 아주 잘 써 주시는 분들이 '펑키 음악' 정도로 표현해주셨고요. 제가 (2집 '뉴 댄스2' 수록곡인)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1등을 하니까 그때 서야 외국 자료를 찾아서 힙합이란 말을 써 주시더라고요. 그 뒤 듀스도 나오고 하면서 힙합이란 용어를 많이 쓰게 됐죠. 힙합 음악을 만드는 개념 중에 샘플링(기존 발표 음악의 일부분을 빌려서 본인 음악의 일부 재료로 삼는 기법)이라는 게 있어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샘플링의 개념을 처음 시도해서 대중에게 비전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예가 현진영이 신중현 '미인'과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했었지'를 샘플링한 노래다.) 그런데 일부 젊은 평론가들이 미국 곡을 무단 사용했으니까 표절이라고 지적해요. 전 그 분들을 일일이 다 찾아가서 만나요. 얼마 전에도 만났어요. '어떤 근거로 그렇게 얘기하냐. 여건상 미국 가서 원작자를 만날 수가 없는 시대였는데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가 있냐'고 물어요."(현진영)

-젊은 세대와 계속 소통하시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 노력이 대단합니다. 2집엔 듀스의 이현도 씨도 참여를 하셨더라고요.

"'너에게만'이 작곡가로서 현도 입봉작이에요. 현도가 와와를 할 때부터 작곡 실력이 괜찮았어요. '더클래식'으로 활동한 박용준 씨가 편곡을 하면서 이수만 선생님도 오케이 했죠."(현진영)
[서울=뉴시스] 노이즈 홍성구, 한상일. (사진 = 마포문화재단 제공) 2024.08.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노이즈, 하우스의 선구자…프로듀서가 포함된 빅뱅 원조

-전 노이즈 덕분에 하우스라는 음악 장르를 처음 접했어요. 개인적으로 전 노이즈가 '빅뱅'의 원조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룹 안에 프로듀서(천성일)가 있었잖아요. 노이즈는 또 국내 사실 인하우스 시스템을 개척했던 라인음향 소속이기도 했고요. 종구 씨의 보컬은 너무 단단했고, 상일 씨는 춤 하면 빠질 수 없는 분이죠.

"원래 노이즈는 프로듀서 중심의 기획 앨범을 내려고 만든 팀이에요. 종구 형, 성일이 형 두 분이 앨범을 내려고 했죠. 프로듀서인 김창환 형이 원래 DJ다 보니까 DJ 프로듀서 앨범을 내려고 한 거죠. (댄스 프로듀서 멤버가 주축인) 미국의 씨엔씨 뮤직 팩토리(C&C Music Factory)처럼요. 그런데 창환이 형이 강남역에서 유명한 춤꾼이었던 저와 김학규 씨를 찾아온 거예요."(한상일)

-그 때는 춤꾼들의 시대이기도 했잖아요.

"사실 진영이 형이 와와랑 '야한 여자' '슬픈 마네킹' 할 때 많이 봤어요. 춤추는 학생들에겐 워너비였거든요. 이후랑 저랑학규 씨는 강남역에서 춤으로 잘 나가고 있었어요. 이태원 쪽은 절대 안 넘어갔죠. 진영 형하고 '박남정과 프렌즈'가 있어서 저희는 상대가 안 됐거든요. 사실 창환이 형님이 처음 찾아오신 뒤 저희는 3개월 동안 도망 다녔어요. 저희는 가수가 꿈이 아니었고 그냥 춤추고 노는 게 좋았거든요. 또 주위에서 가수 어설프게 하면 잘 안 풀린다고 얘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 갔는데 성일이 형, 종구 형이 기타를 치면서 '너에게 원한 건'를 부르고 있는 거예요. 근데 멜로디가 너무 좋았어요. '이거 뜨면 잘 되겠다'는 단순한 마음에 시작했죠."(한상일)

-종구 씨 보컬은 당시에도 정말 시원하고 탁월했습니다. 팀 전에 솔로 활동도 하셨다고요.

"전 팝 발라드 비즈니스 계열 음악을 했었고 통기타 가수도 좀 했었어요. 그러다가 솔로 앨범(1991년 '그대의 슬픈 눈빛')을 냈었어요. 이후 음악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가 창환이 형을 만났죠. 창환이 형이 당시 프로듀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좋다며 두 곡을 불러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당시 계획은 신승훈 씨 두 곡, 박미경 씨 두 곡, 김건모 씨 두 곡 이렇게 앨범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여러 사정이 생기면서 천성일 씨랑 저랑 둘만 남은 거예요. 그랬더니, 창환이 형이 너네 둘이 해봐라 해서 하게 된 거죠."(홍종구)

"저랑 학규 씨가 종규 형, 성일 형 양쪽에 날개가 돼 시너지가 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마이크도 안 줬어요. 노래한 게 없으니까요. 2집부터 노래, 코러스에 조금씩 참여를 하게 됐죠. 사실 노래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불러야 음반이 더 많이 팔리거든요. 형네들이 인기가 많아졌고 다행히 저랑 김학규 씨도 인기가 많아져서 나중에 저희가 '형네 둘만 갖고 안 된다'고 얘기하기도 했어요. 하하. 중창단이라고 하죠. 우리 이후에 그런 팀들이 많아지게 됐어요. 특히 우리가 '상상 속의 너'(노이즈 3집)으로 엄청 잘나가고 있을 때 R.ef가 딱 나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경희대 행사를 하는데 엔딩이 R.ef인 거예요. 그 전까지 저희가 엔딩이었거든요. 당연히 화났죠. 당시엔 신승훈 형, 건모형, 서태지와아이들 아니면 저희가 거의 엔딩이었거든요. 또 노이즈가 하우스, 테크노를 지켜야 하는데 R.ef가 비슷한 음악을 들고 나온 거죠. 또 R.ef 춤의 더 격하고 빨랐어요. 안무 하는 제 입장에선 파괴력이 컸던 거죠. 그렇게 혼자 위기감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하하."(한상일)
[서울=뉴시스] R.ef 이성욱. (사진 = 마포문화재단 제공) 2024.08.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R.ef, 비주얼 센터 갖춘 대형 인기 그룹


-R.ef 인기도 대단했어요. 1집 '레이브 이펙트'(1995)에서 '고요속의 외침' '이별공식' '상심'이 히트했고, 2집 '백 투 더 블랙(Back To The Black)(1996)에서도 '찬란한 사랑'(상심2)과 '마음 속을 걸어가' '재즈' 등 세 곡을 동시에 밀었고 뮤직비디오 역시 컴백과 함께 세 편을 한꺼번에 촬영했죠.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프로모션이었는데요. 또 성욱 씨는 지금 K팝 아이돌그룹의 센터이자 메인보컬 역할을 일찌감치 하셨어요.

"성욱이는 일본에서도 스카우트 얘기가 있었어요."(현진영)

"형들도 다 경험을 해 봤지만 가수는 가장 인기 있었을 때를 본인이 제일 잘 알아요. 그 때는 밖에 다니지를 못 하니까요."(이성욱)

-R.ef도 다양한 도전을 했죠. 중간에 팀 뜻도 바뀌었잖아요.

"데뷔할 때는 '레이브 이펙트(Rave Effect)'의 약자였어요. 그러다 3집 때 '러프 이지 플레이버(Ruff Eazy Flava)' 약자가 됐죠. 그때 힙합을 시도했거든요. 철우 형이 해외에서 유행한 자료를 VHS에 담아 가져왔는데 그 때 힙합이 굉장히 유행할 때였거든요. 우리도 정말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쉬면서 한 6개월 이상 연습을 했죠. 당시 H.O.T, 젝스키스 같은 친구들이 워낙 강세여서 저의 인기가 사실 좀 많이 떨어지긴 때이기도 했어요. 좋게 말하면 멋진 도전이었는데 잘 안 됐어요."(이성욱)

[서울=뉴시스] 한상일, 이성욱, 현진영, 홍종구. (사진 = 마포문화재단 제공) 2024.08.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H.O.T, 젝스키스가 K팝 1세대 아이돌 그룹으로 꼽히지만 네 분이 현재 K팝의 초석을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신 건 부인할 수 없죠. 특히 댄스음악의 계보를 만드셨습니다. 이번 공연은 그 흐름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이고요.

"사실 코로나 전에 박남정 형, 진영이 형, 노이즈 그리고 R.ef까지 해서 네 팀이 함께 컬래버레이션 공연 한 번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었어요. 지금 자녀를 키우는 분들이 저희 음악을 다 들어오셨고 그 때 유행한 춤들을 다 하나씩 따라출 수 있잖아요. 그것 자체가 재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이성욱)

-90년대는 댄스음악뿐 아니라 장르의 황금기였죠. 지금은 K팝 중심으로 쏠려 있습니다. '싱어게인3'로 주목 받은 신해솔 씨를 비롯 제작도 하고 있는 현진영 씨는 더 고민이 많아질 거 같아요.

"지금도 장르는 많아요. 다만 장르 관계없이 예쁘고 잘 생긴 애들이 나오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으로 바뀐 거죠. 그러니까 다른 장르들이 빛을 못 보는 거예요. 제가 한동안 가수는 안 키웠어요. 보컬 제자들은 많이 있죠. 그런데 이 친구들 음반을 내려고 하다 보니까 작곡가를 키우는 회사가 가수를 키우는 회사로 바뀐 거예요. 지금 한둘씩 세상에 내보내는데 인디처럼 나와요. 전 그 시장이 앞으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디는 장르가 다양하고 사람들에 맞춰서 만드는 음악이 아니거든요.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만든 것이 유행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아티스트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걸 할 수 있는 인디 친구들의 포지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현진영)

-그런 상황에서 인디를 지원하고, '어떤가요' 시리즈로 다양한 장르를 재조명하는 마포문화재단 같은 기관의 역할도 중요하겠네요.

"지금 한국 음악은 딱 두 개잖아요. 아이돌, 성인 가요. 저희 같은 사람들이 여러 장르의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쉽지 않은 건 사실이죠. 인구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성인 가요는 고령화가 되면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아이돌 시장은 계속 받아들이게끔 미디어에서 제공을 해주니까요."(홍종구)

"진짜 나이를 먹어보니까 음악을 접할 시간이 없어요. 유일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때는 자동차 안이에요. 밖에선 일하고, 집에 오면 육아 해야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이 있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런 와중에 이번 공연이 우리 세대의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이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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