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 러에 노동자들 ‘유학생으로 위장’ 편법 파견”

신규진 기자 2024. 8.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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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의 철수 요구로 외화벌이 막히자
北, 유학생 비자로 ‘대북 제재’ 우회


북한이 6월 러시아와 관계를 격상시키는 새 조약을 체결한 후 유학생으로 위장한 노동자들을 러시아에 집중 파견하는 동향을 우리 정부가 주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노동자는 최근 재개된 북-러 여객열차편 등으로 러시아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북-러는 새 조약에서 ‘교육 분야 교류·협조’를 명시했지만 실제론 이를 악용해 불법 노동자 파견의 문서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4월 북한은 김승두 교육상이 방러해 러시아 교육기관의 북한 학생 정원을 늘리는 방안도 논의한 바 있다. 결국 북한 노동자 파견을 금지한 대북제재로 노동비자 발급이 어려워지자 북-러가 관광비자보다 체류 기간이 긴 유학생 비자를 활용해 노동자를 ‘편법’ 파견하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 당국은 최근 이 같은 북-러 간 밀착 움직임을 포착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도 “러시아가 교육기관을 통해 임금을 루블로 지급할 예정이라고 한다”며 “다만 수수료 문제 등으로 고용업체와 교육기관 간 일부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특히 정부 안팎에선 중국이 자국 내 북한 노동자들의 전원 귀국을 요구하는 등 북-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로 노동자 파견 루트를 급선회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이 최근 중국 주재 무역대표부 인력들에게 귀국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북-중 간 갈등이 더 심화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노동자 파견’ 中루트 막힌 北, 러로 외화벌이 갈아타기 맞불

“北노동자들, 유학생 위장 파견”
외화벌이 막힌 北-노동력 부족한 러… 6월 조약 체결후 파견 노골화 기류
北, 中무역대표부 인력 귀국 지시… 中의 ‘철수 요구’에 노골적 반발“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사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체육관 부근 해변에서 북한 노동자 5명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2012.08.28 동아일보 DB
북한이 러시아로 노동자를 대거 파견하려는 조짐을 최근 보이는 건 북-중 간 이상 기류에 따른 반작용, 일종의 ‘풍선 효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다. 그런 만큼 북한은 우방인 중국, 러시아에 전체 노동자 파견의 90% 이상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 노동자들 전원 귀국을 요구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자 북한이 외화벌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로 급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북한 당국은 중국 주재 무역대표부 인력들에 대한 대규모 귀국 지시까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파견 노동자 문제를 두고 북-중 간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더 이상 중국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며 ‘맞불’ 포석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 “러 파견 북한 노동자 분야 확대”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수천∼수만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올해 보고서에서 북한이 해외 노동자 파견으로 연간 7억5000만∼11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국제사회가 감시해 온 만큼 앞서 신규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은 간헐적이고 소규모로 주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러시아와 외화벌이가 시급한 북한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6월 북-러 조약 체결 이후엔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이 더욱 노골화되는 기류다.

특히 북-러는 불법 파견을 본격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광 비자보다 체류 기간이 긴 유학생 비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4월 북한 교육상이 방러해 유학생 비자 쿼터를 확대한 뒤 6월 북-러 조약으로 교육 분야 협력을 문서화하고, 이후 실제 파견까지 진행하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는 것. 양국은 새 조약 12조에 “농업, 교육, 보건, 관광 등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조를 강화”한다고 명시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러시아는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있다’면서 유학생으로 위장한 노동자 편법 파견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8월 평양∼블라디보스토크 항공 운항을 재개한 북-러는 최근 나선∼블라디보스토크 여객열차 운행을 재개해 은밀한 노동자 송출 환경을 조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 후 “두만강에 자동차 다리를 건설하는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힌 만큼 노동자 파견을 위한 추가 ‘루트’가 마련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북한 노동자들이 기존엔 (러시아) 건설 분야에만 집중 투입됐다면 이젠 더 다양한 지역, 분야에서 일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을 위한 건설, 농업 분야 작업을 넘어 이젠 전방위적으로 북한 노동자가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 북-중 노동자 파견 논의 여전히 교착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대다수의 체류 기한은 지난달을 기점으로 대거 만료됐지만 북-중 간 노동자 파견 논의는 여전히 교착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이 중국에서 무역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는 인력들에 대해 매우 이례적으로 귀국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중국 현지 식당과 공장에 파견된 일부 노동자들에 대해 귀국 지시가 내려진 사실이 전해졌는데 이번엔 중국 주재 무역대표부 인력들에게도 귀국을 통보했다는 것. 조 위원도 “지난달 말부터 단둥 등 중국 주재 무역일꾼들이 대규모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북한이 외화벌이에 미칠 타격까지 감수하면서 무역일꾼들을 들여보내라고 한 것은 양국 간 갈등 상황에서 북한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상징적인 조치로 보인다. 앞서 김 위원장은 중국에 근무 중인 북한 외교관들에게 “중국 눈치를 보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당국도 “북-러 간 신조약 체결 이후 중국 내 북한 파견 인원 교체 동향을 면밀히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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