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만든 비현실적 택시 월급제, 노사가 막았다... 도입 2년 유예
여야가 2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택시 월급제’ 전국 도입을 2년간 유예하기로 19일 합의했다. 다만 3년 전부터 월급제를 시행해 온 서울시는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 택시 월급제 전국 시행을 하루 앞두고 여야가 2년간 유예를 결정한 것은 택시 업계 노사(勞使) 모두 시행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기사들이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고 고정 급여를 받는 월급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지역 택시 업계는 도산에 내몰릴 수 있다며 시행 유보를 호소해 왔다. 정치권에선 “국회가 현장을 모르는 탁상 입법을 추진했다가 택시 업계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 소위에서 택시운송사업발전법 개정안을 심사하고 택시 월급제 전국 확대 시행을 2년간 유예하기로 의결했다. 소위 위원장을 맡은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워낙 대립하고 있어 전국 시행을 2년간 유예하는 대신 국토교통부가 1년 이내에 택시 산업 전반에 대한 발전 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여야는 국토위 소위에서 의결한 유예안을 오는 27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8일 본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국토위 관계자는 “택시 월급제 전국 확대의 법률상 시행일은 20일부터지만 여야가 2년 유예를 합의한 만큼 행정적으로 사실상 시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국토위 소위 회의에는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등 택시 노사 단체 관계자들도 참석해 월급제 폐지를 요구했다. 반면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는 “법 시행을 유예해 택시 노동자들이 2년 이상 최저임금도 못 받고 위험한 질주를 하게 됐다”며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월급제를 시행 중인 서울시 택시운송사업조합은 “서울 택시만 월급제를 적용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했다.
여야가 19일 국회 국토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심사한 택시운송사업발전법 개정안은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지난달 발의했다. 택시 월급제 도입의 근거가 되는 현행 이 법에선 택시 기사의 소정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데, ‘노사가 합의한 경우에는 소정 근로시간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게 핵심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택시 업계가 격렬하게 반발하는 만큼, 유예도 일시적인 대책일 뿐”이라면서 김정재 의원 개정안을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국토부 관계자들도 “60세 이상 고령 택시 기사가 전체의 59%에 달해 주 40시간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며 개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구체적으로 택시 월급제의 부작용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월급제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김정재 의원안은 처리하지 않되, 월급제 전국 확대를 2년 미루는 절충안에 여야가 합의한 것이다.
택시 월급제는 법인 택시 운전자가 주 40시간 이상 일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도록 하는 제도로, 2019년 8월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주도해 여야 합의로 입법화했다. 당시는 타다 등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자의 운송 사업 허가 여부가 정치권의 관심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타다 등에 반발한 법인 택시 기사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기사들의 사납금 제도를 폐지하고 매월 200만원 이상을 고정 월급으로 지급하자는 취지였다. 서울시는 2021년 1월 1일부터 우선 시행됐고 다른 지역은 유예를 둬 2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당시 박홍근 의원은 “택시 사납금제가 기사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월급제 도입 후 노사 모두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경영 악화를 부추기고 생존을 위협한다”고 반발했다. 2020년 코로나가 발발한 후 서울에선 법인 택시 기사 상당수가 배달·택배 업종으로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택시 기사 공급과 승객 수요가 부족한 지방에서도 ‘주 40시간 이상’ 근무를 강제하면 기사들의 유연 근무가 불가능해 다른 업종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택시 회사 입장에서도 기사 1명당 고정 급여로 매월 200만원 이상을 지급해야 해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서울 외 지역에서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기사는 10%밖에 안 된다”면서 지방에서 완전 월급제가 시행될 경우 서울보다 부작용이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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