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넘어, 경계의 틈에서.. “다시 경계를 재구성하고, 경계의 공간에서 길을 묻다”
김미기 작가 개인전 ‘수평면에 뜬 별‘
# “별은 언제나 하나의 수평선 위로 떠 오를까?”
이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한 물음이 반복된 결과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과연 진실한가, 아니면 그저 보고 싶은 대로만 보이는 환영에 불과할까. 현실과 추상을 오가는 사유가 회화 속에서 반향을 일으키면서 세계의 이면으로 걸음을 이끕니다.
작가의 작업에서 ‘경계’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구분하는 개념에서 확장해, 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굳이 ‘정의’의 프레임을 씌우자면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가 제시한 ‘리좀(Rhizome)’적 사유가 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전통적인 수직 구조를 거부하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비중심적이고 확산적인 네트워크로, 어떤 지점이든 열려 있어 다른 어떤 곳과도 접속될 수 있는 가변적이고 역동적인 체계입니다. 작가가 구체화한 ‘수평선‘은 이런 ’리좀‘적 사유가 시각화한 상징물로, 고정된 경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요소들과 연결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네트워크 일부로 작동하면서 변화와 창조의 탈주선을 제시합니다.
제주시의 예술 공간 '스튜디오126'에서 19일부터 9월 3일까지 이어지는 김미기 작가 개인전 '수평면에 뜬 별'입니다.
하나의 현상이나 자연의 경이에 대한 감탄에서 나아가, 대상과 자신의 관계를 향한 부단한 작가적 고민을 18점의 회화로 선보입니다.
작품들은 제주의 ‘펄개’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펄’(또는 폴, 뻘이라는 의미)과 포구라는 의미의 ‘개’를 합친 ‘펄개’는 바닷가에 모래가 쌓여 형성된 평탄한 지형을 말합니다.
바다와 땅이 만나는 공간이자,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장소로서 작가는 이 펄개에서 느낀 다양한 빛과 감정을 회화로 표현하며 그 경계를 허물어 확장된 의미를 전달하려 합니다.
작가는 “펄개는 바다와 육지, 물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라며 “그곳에서 ‘경계’라는 개념을 재구성(했다)”라고 말합니다. 바다이면서도 평탄한 땅이 되기도 하고, 휴식처이면서 동시에 일터가 되는 ‘펄개’를 향한 시선은 낯선 환경과 인식의 충돌을 빚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얼마나 다층적이며 유동적인지 깨닫는 경지에 이릅니다.
‘수평선’은 자연의 경계가 아닌, 복잡한 관계망의 일부로 표출되고, 관람객은 그 관계망 속에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품 속에서 이런 하나의 장면 속에서 구상과 추상이, 기존의 색과 형태가 ‘경계’를 허물고 공존합니다. ‘경계'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재구성됩니다.
이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차연(differance)’과도 연결돼 읽힙니다. 모든 의미가 끊임없이 뒤로 미끄러지고 변형되는, 계속 드러나는 (둘) 사이의 차이를 지속적으로 발견해 가는 '과정'의 열린 해석을 전제한다면 작가의 '수평선'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계속해 변화하는 의미의 장으로 진입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작품 속 색과 형태는 익히 알고 있는 현실의 틀을 벗어나, 기존의 의미를 흔들며 또 다른 의미망을 형성합니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김지혜 평론가(미학), 우아름 작가(독립 연구자)과 함께 작업한 비평 프로그램의 결과물도 함께 소개합니다. 이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평론, 대화록, 영상 등으로 작가 작업을 한층 더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김지혜 평론가는 “(작가의) 작업은 보편적 색에서 벗어나, 타인이 발견하지 못한 본래의 색을 감성과 의식으로 필터링해 새롭게 등장시킨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시선은 우리가 알고 있는 풍경의 경계를 허물고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의미를 창출한다"라고 말합니다.
작가 노트에서 “늘 스스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독려하며, 때로는 아예 다른 환경이나 자극에 던져놓는 것으로 창작의 에너지를 삼는”다라고 밝힌 작가는 “일상 속, 익숙하고 안정을 주는 것과 갈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나에 대한 투영”이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합니다.
전시 기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일요일은 휴관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스튜디오126의 인스타그램 계정(@studio126_jeju)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와 인문대(서양화·미학)를 졸업한 작가는 ‘BABEL 미완의 도시’(갤러리 소밥, 경기 양평, 2016), ‘미완의 도시’(북한강갤러리, 경기 양평, 2016), ‘김미기 개인전’(이중섭창작스튜디오전시실, 서귀포, 2022), ‘더숲 초대 개인전 펄개’(더숲 갤러리, 서울 노원, 2023) 등 개인전들을 갖고 ‘옆집예술가김씨’(북한강갤러리, 경기 양평, 2015), ‘오감제주’(이중섭창작스튜디오전시실, 서귀포, 2019), ‘김승민 & 김미기 드로잉전’(이중섭창작스튜디오전시실, 서귀포, 2021), ‘신파new wave’(중문아트 119, 서귀포, 2022), ‘청년작가 4인전’(갤러리두, 서울 청담, 2023), ‘예술공간 이아 레지던시 결과보고전-경계(境界)에 서서’(예술공간 이아, 제주, 2023) 등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이중섭창작스튜디오 10기 하반기 입주작가(2019), 예술공간이아 6기 입주작가(2023)로 창작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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