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의 복수혈전… 1승 남았다
신진서, 구쯔하오 꺾고 2회 란커배 결승 선제점… 80수도 안돼 우세 확립
나무꾼 왕질(王質)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두 동자(童子)가 두는 바둑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들이 권하는 과일 열매를 받아 입에 넣으니 배고픔도 잊었다. 대국이 끝나자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 듯 도끼자루가 썩어있었다.
란커배 세계바둑 오픈전 창설 모티브인 ‘난가 전설’이다. 지난해 원년 대회서 중국 구쯔하오(26) 9단이 우승했다. 신진서(24)가 결승 1국을 완승한 뒤 2국과 3국도 필승지세였으나 잇달아 뒤집히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로부터 꼭 1년 만인 19일, 둘은 똑같은 장소(취저우 국제바둑문화교류센터)에서 또 한 번 패권을 놓고 마주 앉았다. 올해도 결승 3번기 1국은 신진서의 몫이었다. 180수 끝 백 불계승.
바둑은 ‘신중 모드’로 출발했다. ‘한 방’을 노리는 전법보다는 쌍방 모두 대세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구쯔하오의 행마는 작전의 일관성이 없었다. 57 한 수에 30분 이상 장고 후 대악수가 등장했다. 80수도 놓이지 않은 시점에 벌써 ‘반면(盤面) 승부’ 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엔 56개월 연속 한국 1위의 위엄을 보여주는 일방적 흐름이었다. 중국 7위에 랭크된 구쯔하오는 우상귀에서 마지막 승부를 노려봤지만 패의 대가로 좌하 흑 대마가 잡히자 항복했다. 바둑TV 해설자 송태곤 9단은 “신진서 9단의 수읽기와 판단 능력이 빚어낸 완승”이라고 총평했다.
이로써 신진서는 21, 22일 열리는 2·3국 중 1승만 추가하면 세계 메이저 대회 3관왕(LG배·잉씨배 포함)에 오르며 총 우승 횟수를 7개로 늘리게 된다. 구쯔하오와의 상대 전적은 최근 5연승 포함 12승 6패 더블스코어를 만들었다.
이번 란커배는 올 들어 신진서가 약 반년간 지속해온 국제 대회 부진을 털어낼 기회란 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그는 3월 춘란배, 5월 LG배, 7월 잉씨배 등 3개 국제 대회서 초반 탈락했다. 8월엔 마이너급인 국수산맥서도 우승에 실패했다.
신진서가 국제 메이저 사상 두 번째 ‘즉각 설욕(revenge)’ 사례를 만들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1993년 제6회 후지쓰배 결승서 유창혁에게 패한 조훈현이 이듬해 7회 결승서 패배를 되갚고 우승한 것이 유일한 사례다. 마이너 대회로는 TV아시아선수권 24회 대회(2012년)서 백홍석이 쿵제에게 전기 결승 패배를 설욕한 바 있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이므로 방심할 수 없다. 란커배만 보고 준비해왔다. 승패를 떠나 내 바둑을 두고싶다.” 1년이 수백년인 듯, 마음 한구석이 도끼자루 썩듯 단 한순간도 편치 않았던 신진서의 다짐이다. 란커배 우승 상금은 180만위안(약 3억 4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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