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사랑 노래’ 공식 버리고… 코첼라 첫 K보이그룹 ‘중소돌의 기적’
‘중소돌(중소기획사 아이돌)의 기적’. 최근 8인조 보이그룹 ‘에이티즈’에게 자주 따라붙는 수식어다. 지난 7일 미국 대중문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이 그룹을 ‘2024년 영 할리우드 임팩트 리포트 명단’에 올렸다. 매해 북미 지역 차세대 유력 톱스타를 점치는 명단이다. 에이티즈는 미국 코첼라에서 공연한 최초의 한국 남성 그룹이자 지난해 연말과 올해 6월 빌보드200 차트에서 각각 1·2위를 차지한 팀으로 소개됐다. 하이브, SM, JYP, YG 국내 4대 기획사가 아닌 중소기획사 출신이 세운 첫 기록이었다. 에이티즈는 지난 3일 레이디 가가 등 세계 정상급 가수들만 서 온 4만여 명 규모의 뉴욕시티필드에서 단독 공연도 펼쳤다. BTS 이후 이 공연장에 입성한 두 번째 한국 그룹이다. 2018년 데뷔 후 6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에이티즈가 데뷔하던 무렵 직원 20명 남짓이던 소속사 KQ엔터테인먼트의 몸집도 현재 80여 명으로 불어났다. 빠른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최근 마포구 사옥에서 만난 김규욱 대표는 “특색 있는 세계관 음악”을 첫째로 꼽았다. 에이티즈는 데뷔곡 ‘해적왕’부터 지난 5월 미니 10집 ‘골든 아워: 파트1′까지 꾸준히 ‘청춘의 항해를 떠나는 8명의 해적’이란 주제를 음악에 녹여냈다. 김 대표는 “인지도 낮은 신인 아이돌에게 ‘세계관’은 고유한 음악 색깔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길잡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돌이라고 해서 왜 사랑 이야기만 해야 하나. 해적은 다채로운 여행을 떠나는 만큼 역동적인 젊은 층의 공감대를 잘 담을 그릇이라 여겼다”고 했다.
김 대표는 2013년 보이그룹 블락비가 소속된 세븐시즌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이후 사명을 변경해 지금의 KQ엔터테인먼트를 탄생시켰다. 미디어 유통회사에서 CJ 계열사 등에 콘텐츠 기획안을 제공하는 디렉터로 7년간 근무하다가 “2008년 초창기 아이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작은 기계에 유튜브,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가 탑재된 걸 보고 이걸로 즐길 음악 콘텐츠가 반드시 필요해지겠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에이티즈 기획 단계부터 “향후 3·4세대 아이돌에겐 ‘상호 참여형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아이돌은 좋은 음악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팬들이 알아서 사갔다. 하지만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지금은 24시간 팬들과 소통하며 콘텐츠를 사러 오도록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고 했다. 에이티즈가 앨범마다 해적 세계관 스토리에 연관된 내용을 모스부호 소리나, 특정 지역의 위도와 경도를 뜻하는 가사로 심어 놓은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야채 트럭에 청양고추를 잔뜩 싣고 신곡을 크게 틀며 서울 시내를 활보하기도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들까지 멤버들의 강렬한 퍼포먼스에 ‘청양고추맛’이란 한국어 별칭을 붙여준 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했다.
에이티즈의 가장 큰 해외 팬덤 지역은 미국과 영국이다. 김 대표는 “그룹이 지하주차장에서 캡 모자를 활용해 펼친 군무 영상이 소셜미디어 입소문을 타면서 영미권 팬을 대거 유입시켰고, 이후 미국 LA 등지에서 1000~1500석 공연을 돌며 팬덤을 다졌다”고 했다. 다만 그는 “신인 그룹이 인지도를 올리겠다며 무작정 해외 공연부터 나서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선 최근 지역 방송국을 중심으로 대형 K팝 그룹에 중소형 그룹을 끼워서 여는 옴니버스 공연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200달러 가까이 티켓값을 내고도 가장 좋아하는 ‘최애’ 그룹은 20분밖에 못 본다는 현지 팬들의 불만이 커졌다”며 “한류 초창기 K팝 공연이면 무작정 찾아 오던 해외 팬들이 이젠 옥석 가리기를 하며 영리한 소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또 “해외 팬들은 자국 문화에 대한 존중이 담긴 콘텐츠를 요구하고, 이를 벗어나면 적극적으로 시정 요청을 한다”면서 “이런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해외 진출만 서두르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가요계에선 KQ엔터테인먼트가 ‘BTS의 기적’을 재현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BTS의 소속사이자 지난 4월 K팝 기획사 최초로 대기업 집단에 지정된 하이브 역시 모태는 KQ엔터처럼 중소기획사인 빅히트뮤직이었다. 김 대표는 그 길목 앞 가장 큰 난제로 “연습생 수급 문제”를 꼽았다. “가요계 연습생들도 첫 출발부터 대기업을 원하는 일반 취업준비생처럼 국내 4대 기획사 문만 주로 두드린다”며 “에이티즈 멤버를 구할 때도 전국 실용음악학원을 돌며 100명에게 명함을 돌리면 1명이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겐 에이티즈의 성공이 기적이 아닌 생존을 위한 치열함의 결과였다”며 “K팝뿐 아니라 어느 산업이건 빠르게 성장할수록 수혜의 배분에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은 결국엔 하나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에이티즈
2018년 10월 데뷔한 8인조 보이그룹. 그룹명에는 ‘10대들의 모든 것(A TEEnage Z)’이란 뜻을 담았다. ‘사막을 모험하는 해적’이란 세계관을 내세워 데뷔 초부터 영미권 팬들의 주목을 받았고, 지난해 12월 빌보드 200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후 이달 초까지 LA, 뉴욕, 텍사스 등 북미 10개 도시에서 총 관객 20만 명 규모의 투어를 진행하고 미국 최대 규모 음악축제 코첼라 무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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