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연밥 캐는 아가씨의 노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세뇌’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정작 그 단어의 어원, 그 단어가 언제부터 대중적이 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세뇌의 역사’를 쓴 미국 정신의학자 조엘 딤스데일은
‘세뇌’ 즉 brainwashing이라는 단어가 6.25 이후
미국으로 돌아오길 거부한 미군 포로들이
중국에 남게 된 원인에 대해 미국 정부, 학계, 언론계 등이 열띤 논의를 벌인 결과
유행하게 된 단어라고 합니다.
중국어의 ‘시나오(洗腦)’에서 비롯된 단어라고요.
‘세뇌’를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설계한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
소련의 레닌은 공산주의 체제에 맞는 ‘새로운 인간’을 빚어내기 위해
인간을 표준화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인간 개조’ 프로젝트를 위해 파블로프와 손을 잡았어요.
개를 이용한 파블로프의 유명한 조건반사 실험이
인간에게도 적용되었고,
파블로프는 스트레스와 수면 박탈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취약해지는지를 치밀하게 연구하게 되었지요.
이 실험에 따른 연구 결과를 이용해 만들어진 심문 각본이
6.25 때 중공군들이 미군 포로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이 6·25 미군 포로들은 왜 中에 자발적으로 남았나
성하(盛夏)에 피는 꽃은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청아한 건 연꽃이 아닌가 합니다.
창덕궁 후원에 핀 연꽃 사진을 들여다 보다가, 허난설헌의 ‘채련곡(采蓮曲)’을 읽었습니다.
秋淨長湖碧玉流(가을날 맑고 긴 호수는 푸른 옥 흐르는 듯)
荷花深處繫蘭舟(연꽃 가득한 곳에 작은 배 매어두었네)
逢郞隔水投蓮子(님 만나려 물 너머로 연밥 던졌다가)
遙被人知半日羞(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 나절 부끄러웠네).
시 속 여인은 사람 키보다 높게 자란 연잎 사이 깊숙한 곳에 쪽배를 숨겨두고
마음에 둔 이를 기다립니다.
저 멀리 그가 나타났지만 좀처럼 나를 봐 주지 않는군요.
님의 눈길을 내게 돌리려 용기 내어 연밥을 휙 던졌는데,
그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한참을 수줍어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플러팅(flirting)’, 즉 추파를 던지는 행위가 대담하네요.
중국 강남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연밥을 따서 주는 것은 사랑을 고백하는 의미가 있답니다.
예로부터 뭇시인들이 채련곡을 읊은 것은
흔하디 흔한 사랑 노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러 보고파서겠지요.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당나라 이백의 채련곡이 특히 유명한데,
춘추시대 미인 서시의 빨래터였다는 약야계(若耶溪)를 배경으로 합니다.
若耶溪傍採蓮女(약야계 근방 연밥 따는 아가씨는)
笑隔荷花共人語(연꽃 사이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데)
日照新妝水底明(햇빛은 갓 단장한 얼굴 물밑까지 비추고)
風飄香袂空中擧(바람은 향기로운 옷소매 공중에 들어 나부끼네)
岸上誰家遊冶郞(언덕 위엔 뉘집 한량들인가)
三三五五映垂楊(버드나무 사이 삼삼오오 어른거리네)
紫騮嘶入落花去(붉은말 울며 떨어지는 꽃 속으로 사라지니)
見此踟躕空斷腸(이를 보고 머뭇대며 괜히 애 태우네).
꽃 지고 연밥 영글면 이 더위도 꺾이겠죠.
처서가 지나도 여전히 무덥다지만,
마음만은 연꽃처럼 청량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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