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영교의 '구하라법', 가족의 가치를 묻는다

조성은 2024. 8.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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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국가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게 구하라법"
"현실과 맞지 않는 법 찾아내는 게 국회의원의 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구하라법'을 발의했다. 21대 국회에서도 그의 1호 법안이었다. 서 의원에게 '구하라법'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왜 아직까지 입법되지 못했을까. <더팩트>가 서 의원과 구하라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첫 최고위 회의가 열린 날이었을 것이다.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서영교 의원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 앞에 서서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기사는 많이 나가지 않았다. 이재명에 대한 이야기도, 윤석열이나 김건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생법안'이라 불리는 건 대개 관심을 받기 어렵다. 여론, 그러니까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면 모를까. 구하라법이 그랬다. 인기 연예인의 비극적인 죽음, 불행한 가족사, 그가 남긴 막대한 재산과 파렴치한 친모.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고 이는 부모가 부모노릇을 어떻게 했든 혈연관계만 있다면 죽은 자식의 유산을 가져갈 수 있게 했던 현행 민법을 고쳐야 한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혹자는 '왜 그제야 움직였냐'고 하지만 사실 구하라법은 고(故) 구하라 씨 이전부터 시작된 법이다. 서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부터 이 법을 발의해 왔다. 22대 국회 '서영교 1호 법안'이었고 21대 국회에서도 '1호 법안'으로 발의했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서 의원은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며 "사건을 알게 되고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고 전했다.

"아이가 그렇게 죽고 나라에서 위로금 같은 걸 줬어요. 그런데 애 어릴 때 가족을 버리고 간 아빠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 몫을 내놓으라고 하는 일들이 생겼어요. 법적으로 권리가 있으니까. 혼자 애 키운 엄마는 안 그래도 망연자실한데 대응도 못 하고 더 상처받는 거죠. 이게 맞습니까?"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구하라법'은 단순하다. 자녀를 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내용이다. 서 의원은 "상식적인 이야기임에도 법조계에서는 법적 안정성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고 아쉬워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임영무 기자

서 의원은 당장 법제실과 함께 법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미국·스위스 등 해외 선진국에서도 과거 비슷한 사례가 있었고 구하라법과 같은 법이 마련된 상태였다. 서 의원은 이를 참고해 구하라법을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법을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2019년, 구하라 씨가 사망했고 친모가 나타나 권리를 주장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구하라 씨의 오빠가 변호사와 함께 관련 입법청원을 낸 것이었다. 내용은 서 의원이 이미 발의한 법과 유사했다.

서 의원은 유족과 함께하기로 했다. 서 의원의 법안에 '구하라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계기다. 서 의원은 "동생을 잃고 여러 싸움을 시작하게 된 오빠가 친모와도 싸워야 했던 상황"이라며 "법이 바뀌지 않아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가슴아파했다.

구하라법은 단순하다. 양육 의무를 현저히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것.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20대를 지나 21대 국회에서도 입법되지 못했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고치는 건 지독히도 지난하다. 특히나 민법은 더 그렇다. 오래된 법이기에 그동안 만들어져 온 '논리'라는 게 있었다. 서 의원은 "여야 할 것 없이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구하라법을 반대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도 마찬가지였다.

"구하라법엔 '자녀 양육의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는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고 결격사유를 명시해놨거든요. 그런데 '현저히'라는 문구가 애매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민법의 문구를 모조리 뒤져서 '현저히'라는 표현을 대략 11개를 찾았죠. '현저히'라는 표현이 있을 땐 법원이 사회통념을 바탕으로 재량껏 판단해왔어요. 제가 이걸 찾아서 들이대니까 법무부도 당황하더라고요."

구하라법 입법을 위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년을 노력했다. 법무부와 지난한 싸움 끝에 나온 절충안은 여전히 아쉽다. 서 의원은 "한걸음이라도 먼저 나아가 더이상 억울흔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임영무 기자

'현저히'가 해결되자 이번엔 '선의의 피해자'가 문제가 됐다. 구하라 씨의 친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었다. 서 의원은 "친모가 상속받을 것이라 믿고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선의의 피해자라는 논리로 법을 막아섰다"며 "이 논리로 구하라법을 막은 게 우리 당 의원이었다"고 했다. 서 의원은 '법적 안정성'이라는 말을 할 때는 치를 떨었다. 그는 "법무부에 관련 태스크포스(TF)가 있었다"며 "거기에 참여한 민법 전문가, 학자들이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고 했다.

서 의원은 "법무부가 그런 논리를 가져와 '짝퉁 구하라법'을 만들어왔다"고 했다. 서 의원의 '구하라법'은 결격사유를 명시해 자동으로 상속권을 박탈하게 했다. 반면 법무부가 법적 안정성을 위해 '논리적으로' 만든 안은 자녀가 사망하기 전 유언 또는 소송으로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해야 하는 방안이었다. 서 의원은 "아이는 부모한테 버려져도 부모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며 "그런 애기가 자기 죽을 걸 알고 부모를 상대로 미리 유언을 작성하고 소송을 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분노했다.

법무부와 맞서 싸운 끝에 타협안이 나왔다. 서 의원은 "아이가 소송 거는 일은 없게 하고 싶었다. 소송을 걸려면 아이를 버리고 떠난 부모가 해야지 맞지 않냐"면서도 "법무부가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유족이 소송을 걸되, 소송이 난무하지 않게 가정법원이 유족의 신청을 받아 조정하는 절차를 넣었다"고 했다. 서 의원이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서 의원은 "아직도 법무부에서는 이런저런 논리로 구하라법의 취지를 훼손하려 한다"고 했다.

"민법·가족법 등은 개정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법조인들, 학자들은 그렇게 공부를 해왔으니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그런 피해를 입어본 적도, 주변에 그런 일을 당한 사람도 없고요.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는 거죠.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예요. 이해관계 세력이 있거나 지역민이 요구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하라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저 혼자는 힘이 없다"면서 여론의 관심을 당부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임영무 기자

서 의원은 국회의원을 '법과 현실을 연결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법은 불완전하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은 법이 지키지 못하는 사람, 잘못된 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 현실에 맞지 않는 법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 서 의원은 "구하라법은 가족의 의미를 지키는 법"이라고 했다.

서 의원은 "아이를 낳았다면 부모는 양육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상속권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긴 시간 애쓴 끝에 구하라법 통과의 길이 열렸다. 서영교 1호 법안인 구하라법을 꼭 통과시켜내겠다"고 다짐했다.

"낳아놨다고 다 부모는 아니죠. 혈연관계로 얽혔다고 다 가족은 아닙니다. 함께 살며 서로 아끼고 돌보고 지켜준 사람들이 가족이죠. 아이를 키운 사람이 부모예요. 그런 공동체를 국가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게 바로 구하라법입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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