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45] 환락과 죽음
날렵한 몸매의 한 남자가 너른 창공을 가로질러 일렁이는 푸른 물을 향해 날 듯이 뛰어내린다. 오늘날의 다이빙 선수라고 해도 믿을 법한데, 수영복은커녕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걸 보니 예삿일은 아니다. 이 그림은 기원전 5세기, 이탈리아 반도 서쪽 해안에서 번창했던 그리스인들의 도시 파에스툼에 매장됐던 석곽묘 내부의 프레스코화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의 채색 인물화다.
1968년 발굴된 이 무덤은 석판 네 개로 상자를 만들고 그 위를 석판 뚜껑으로 덮은 모양이었다. 다이빙하는 남자는 뚜껑 안쪽에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 네 벽에는 ‘심포지아’ 장면이 있다. ‘심포지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남자들이 모여 와인을 마시고 음악을 즐기며 사랑과 예술, 철학과 사회를 논하던 자유분방한 자리다. 그림 속 인물들 또한 젊은 시종이 항아리에서 따라 주는 와인을 마시며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대화를 하고, 연주를 듣고, 게임을 하거나, 사랑을 나눈다. 이와 같은 ‘심포지아’는 그리스 도기 중에서도 특히 와인 항아리에 널리 그려졌다. 그러나 ‘심포지아’를 내려다보는 천장 자리에, 덩그러니 높은 대 위에 섰다가 물을 향해 뛰어드는 다이버의 모습이란 그리스 문화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주제다.
무덤 주인은 젊은 남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와인과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서 열띤 토론으로 진리를 찾고 서로의 건강한 육체를 탐하며 쾌락을 누리던 현실에서 홀로 동떨어졌다. 여기서 다이빙은 곧 죽음이다. 모든 인간은 물에서 태어났으니, 다시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 죽음이라면 이상할 게 없다. 물속의 영혼이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태어나면 와인으로 축배를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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