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우·승냥이 시대 끝내고, 새로운 정치인 나와야 한다
정치판이 목불인견이다. 왜 정권을 잡았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재야 여당’의 행태도 안쓰럽지만, 다수 의석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집권 야당’의 행태는 거대한 국가적 코미디다.
그 무대의 주인공들이 볼 만하다. 곰이나 구렁이형 정도의 인간도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여우와 승냥이형의 인간들이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계산속만 빠르고 뻔뻔스러움이 몸에 밴 인간들이 서로 할퀴고 으르렁거리는 언행들로 넘쳐나고 있다. 권력 편승과 개인적 보신을 위한 ‘무한 도전’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한 무한 도전에는 아무런 성역도 있을 수 없다는 듯, ‘조그만’ 인간들의 아귀다툼 속에 헌정 질서가 파괴되고 국가의 근간이 되는 제도들이 거침없이 무시당하고 있다. 그 모든 행태들이 ‘민주주의=다수결 원칙’이란 등식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많은 국민이 ‘이러려고 민주화했는가’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수결이 과연 민주주의 그 자체인지 정리하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 전체의 의사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민들 모두가 단일하고 균질적인 의사를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국가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사가 나누어질 경우 다수의 의사를 존중해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면서 소수의 전횡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다만 그것이 민주주의 운영의 원칙으로 작동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다수결로 결정하기 전에 충분한 토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다수의 의사가 소수의 의사보다 타당하다는 점이 더 큰 설득력을 가질 때다. 그러한 과정이 없이 다수결 지상주의가 일방적으로 작동할 경우 민주주의 자체가 파괴된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원칙이라면 주민센터 직원의 선출이나 도로 포장 등 공적 사안 하나하나가 모두 국민투표로 결정돼야 한다. 모든 국가적 결정은 오직 투표를 통해 시행되어야 하며, 국가의 통치 체제나 법률 또는 관행 등도 필요가 없다. 선거 제도나 의회 제도만이 아니라 정당도 존속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면 외딴 섬에 고립된 자족적인 소규모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결국 현재의 ‘집권 야당’은 다수결 지상주의를 표방하면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의와 절제 등의 윤리적 덕목들,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넘은 공공선, 미래에 대한 식견이 다수결 원칙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이뤄진다. 그것이 바로 헌법 1조의 의미다. ‘민주공화국’은 바로 그러한 조화를 추구할 때 구현된다. 그러한 조화를 포기하거나 무시하는 정당은 민주주의 정당도 아니고 국헌에 합당한 정당도 아니다.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는 정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반헌법적인 행동을 하면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반(反)민주주의 혹은 사이비 민주주의로 대한민국은 국가 전체가 쇠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모든 것이 극단에 이르면 그것을 청산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기 마련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의 스포츠 영웅들이 보여준 너무나도 신선한 ‘깜짝 쇼’는 그 태동의 신호다. 승부에 임하면서 열과 성을 다하는 태도, 진솔하면서도 예지(叡智)까지 갖춘 언행은 민주주의를 추하게 변질시키는 정치인들의 그것과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이 시대는 대한민국에 저급하고 졸렬한 품성이나 범속한 식견으로는 극복 불가능한 난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제 새로운 정치인들이 등장해 시민사회 각 영역에서 넘쳐나고 있는 창조적인 에너지를 새로운 차원의 국가 발전으로 승화시키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때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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