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인사 검증 시스템, 고장 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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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통보하면서 내일 오후 3시까지 보내라고 한다. 이러면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겠나." 현 정부의 인사 검증에 관여하는 한 인사가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인사 검증에 만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을 준다면 절대적인 시간 부족으로 누가 보더라도 검증이 요식 행위처럼 끝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대통령실이나 법무부의 구체적인 인사 검증 업무 지침이나 매뉴얼 등이 비공개돼 내부 운영 방식을 밖에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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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통보하면서 내일 오후 3시까지 보내라고 한다. 이러면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겠나.” 현 정부의 인사 검증에 관여하는 한 인사가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엔 아주 예외적이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극소수의 사례라고 생각했다. 인사 검증에 만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을 준다면 절대적인 시간 부족으로 누가 보더라도 검증이 요식 행위처럼 끝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경우가 최근 점점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 근무를 먼저 시작한 뒤 사후 검증을 요구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1일 검증’은 친정 체제 인사의 단면
인사 검증을 하는 방식에도 일부 이상한 점이 있다고 한다. 공직 후보자들이 적어낸 사람들 몇 명 위주로 세평 검증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공직 후보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를 하거나, 흠결을 들출 지인들을 검증 기관에 추천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봐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공직 후보자들의 과오나 약점보다 성과와 장점이 검증 파일에 더 모이는 구조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부적격 후보자들을 제때 제대로 걸러내기 어렵다.
현 정부는 과거 청와대가 주도하던 인사 검증 기능을 대통령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각각 분산시켰다. 법무부는 1차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수집하고, 인사에 대한 찬반 의견 등 2차적인 가치 판단은 대통령실이 하는 방식이다. 잘만 운영된다면 1, 2차 검증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인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책임 소재를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하면서 부실 인사를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총선 이후 충성도가 높은 인사의 돌려막기 기용이나, 특정 라인으로 의심받기에 충분한 인사들의 보직 이동이 계속되고 있다. 주요 자리에 인사권자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후보자를 내세우면 원칙을 지키면서 곧이곧대로 검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집권 중후반기에 친정 체제를 굳히려는 인사 기조가 강화된 것이 ‘1일 검증’이나 ‘칭찬 수집 검증’을 부르는 것 아닌가. 이는 결국 인사 검증 시스템의 고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부적격 인사의 원인이 검증 1, 2차 중 어느 단계에서 발생했는지, 검증에서 걸렸는데도 임명이 강행된 것인지 등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이나 법무부의 구체적인 인사 검증 업무 지침이나 매뉴얼 등이 비공개돼 내부 운영 방식을 밖에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검증 업무를 이원화했을 땐 미국 연방수사국(FBI)을 롤모델로 한다고 했지만 몇 개월 이상의 검증 기간을 갖고, 현장 탐문조사를 하는 미국 방식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정부의 인사 자료 남겨 사후 검증해야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엔 객관적인 검증 자료와 주관적인 평가 자료가 한 묶음이었고, 청와대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사생활이나 평가 정보를 악용할 소지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인사 자료를 통째로 폐기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 부처에서 객관적 자료를 수집하니 그때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적어도 정부 부처의 자료만이라도 전부 보존하고, 예외없이 사후 검증을 받게 해야 한다. 검증 실패 과정이 추후 복원된다면 검증 과정에서 ‘객관의 의무’를 지키려고 더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검증 시스템을 바꾸면서 “음지에 있는 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낸 것”이라고 했던 정부의 약속을 스스로 지키는 길이다.
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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