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에 가려지는 평판… 사후 명성이 진짜다[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명예와 명성은 좋은 평판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다. 누구나 남에게 인기와 지지를 얻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다. 좋은 평판을 얻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국가에 봉사하는 자’의 지위를 얻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입신양명의 방법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관료가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명예도 귀중한 자산이지만 명성은 소수의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따라서 “명예는 어떤 의미에서는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다. 다시 말해 적극적인 성격을 지닌 명성과 대비된다. 명예는 단지 잃지 않기만 하면 된다. 명성은 일단 획득해야 된다.” 따라서 명예를 잃는 일은 치욕스럽지만 명성이 없다고, 무명이라고 해서 서러운 일은 아니다. 명예는 공직에 있다면 누구나 지위에 걸맞게 당연히 갖는 보편적인 평판이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특출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명성은 그 사람이 예외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많은 정치인이 명예는 쉽게 갖지만 명성은 갖기가 어려운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다.
왜 명성을 얻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인가? 인간의 본성인 시기심과 질투심 때문이다. ‘명예는 질투의 대상이 아니지만 명성은 질투의 대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좋은 것에 대해 침묵하거나 무시하면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춘다. 사람들이 대중에게 좋은 공적은 감추고 열등한 것을 두둔하는 것은 질투심 때문이다. 남의 뛰어난 재능과 작품, 업적을 칭찬하지 않고 형편없는 것만을 좋다고 여기는 일이 많다. 그래서 “탁월한 공적을 쌓은 사람은 모두 공적이 없는 사람들을 희생한 대가로 명성을 얻는 것”과 같다. 명예를 얻는 과정에서 시험과 공정한 절차가 있지만 질투가 개입되는 명성은 어렵게 쟁취해야만 된다. 명성의 ‘월계관’을 얻는 곳은 호의적이지 않은 심판관으로 구성된 법정과 같다. 명예는 많은 사람이 더 공유할수록 늘어나지만 명성은 그것을 얻는 사람이 생겨날수록 입지가 좁아져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평범한 사람도 노력을 하면 명예를 얻지만 명성은 말 그대로 고개를 들어 우러러봐야 할 하늘의 별과 같다. 명예는 대중의 사랑만으로 충분하지만 명성은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소수의 지지가 반드시 있어야만 된다. 요약하면 명예는 다수가 얻지만 명성은 극소수만 얻게 된다.
나에 대한 타인의 견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명예와 명성도 그러한 한계를 갖는다. 명예욕이 충족된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니며 명성도 모든 욕망과 마찬가지로 충족되면 공허함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성공 뒤에는 우울, 불안, 고민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거짓 명성을 가진 사람은 늘 불행하다.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게 높은 곳에 있으면 현기증이 나거나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명성 자체에 싫증을 낼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후세 사람의 평가에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서 굴욕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가장 진정한 평가는 사후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생에서는 불행했지만 죽은 후에 명성을 얻게 해주는 ‘위대한 자질’이 행복의 본질이다. 따라서 누구나 꾸준히 자신의 자질을 적합한 방식으로 개발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그 결과는 사후에 기억될 수 있다. 사후의 명성을 얻는 작가의 행복은 ‘위대한 가슴’이나 ‘정신의 풍부함’을 작품에 새겨 넣었기 때문에 수 세기가 지나 독자의 경탄을 받게 된다. 현재 동시대의 호평을 받은 것은 우연한 상황에 의한 것이 많고 진짜 가치가 동시대인의 시기와 질투에 가려지는 일이 많다. 지금 인정받지 못한 위대한 공적은 미래에 더 밝게 빛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사후의 명성이 자신의 공적에 대한 진짜 평가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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