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의료과실 형사기소 750건은 잘못된 통계서 비롯"
환자단체, 정부 추진 의료사고특례법에 "형사소추 못하는 법 없어"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연간 수백명에 달하는 의사가 기소된다는 의료계의 주장은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 변호사는 19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의료분쟁조정'을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일부 의료전문지가 '우리나라의 연평균 의사 기소 건수가 영국에 비해 800∼900배 더 많은 750건에 달한다고 보도한 점을 언급했다.
박 변호사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연간 750건 기소한다'는 것은 (사실) 기소가 아니라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 수가 750명이라는 것"이라며 "허깨비 같은 (검찰) 카운트(통계)를 가지고 잘못된 연구 보고서가 나와서 언론에 잘못 보도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무부든 복지부든 자료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이 2022년 발간한 '의료행위의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3∼2018년 우리나라에서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는 연평균 754.8건이다.
한국에서 의사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대한 형사처벌이 영국과 독일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은 의료정책연구원의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의협 기관지인 의협신문 등 의료 전문지에 보도됐었다.
박 변호사는 의료계 일각의 주장과 달리 대법원 재판연구원 출신 연구자가 최근 발표한 한 논문에 따르면 과실로 인한 의사 기소 건수는 연간 10여건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 자료를 존중한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연간 15건 정도 형사 기소되는데 형사 재판이 보통 3∼4년, 길게는 5년 정도 갈 수 있으니 누적이 된다면 느끼기에는 1년에 60번 정도로 느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어 "실무를 하면서 사법연감에 접수된 민사사건 수를 매년 세는데 1년에 800∼900건이었다가 최근에는 700건대로 떨어졌다"며 "(민사사건이) 이런데 형사 사건 수가 1년에 750건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다음 논의로 넘어갈 수 있고, 국민과 공감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자료도 잘 모르면서 외국 자료와 함부로 비교해서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안덕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박 변호사가 지적한 의료정책연구원 통계와 관련해 "우리가 제시한 자료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나라에서 한 번도 이에 대한 통계를 낸 적이 없었다"며 "형사 조사된 것 중 기소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으로 (통계를)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연 이게 의료계의 일인지(모르겠고), 문제가 있다면 사법부가 스스로 통계자료도 만들고 해야 한다"며 "의협이 무슨 법적 지식이 있어서 그것을 했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부가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제정하려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 변호사는 "형법에서 과실은 예외적으로 처벌한다. 인간은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형법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과실교통방해죄 등에 대해 예외적으로 처벌하는데 굳이 의료인에 대해서만 (이러한 법을 만든다면) 특혜를 준다는 반론에 막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우리나라에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사상의 결과가 발생했을 때 중과실이 없다면 임의로 형을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가 있어서 형사법적 사각에서 보면 의사에 대한 특혜로 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도 있다"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대통령도 불체포특권이 있을 뿐 형사소추를 받지 않을 특권은 없는데 정부가 준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형사소추를 못 하게 하는 것으로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법"이라며 "의료사고를 내도, 중상해 사망사고를 내도 의사가 책임보험에만 가입한 후 (환자에게) 보험회사랑 이야기하라고 하라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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