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일하는 이의 ‘마음’이 죽을 때

기자 2024. 8. 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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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월급 받기 위해 취직하려는 겁니다.”

채용 면접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조직의 설립 목적과 사업 목표를 아십니까”라 물었을 때 “제가 그것까지 알 필요 있습니까?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겠습니다”라고 답한다면? 또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일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조직 발전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냥 제가 편한 쪽으로 일하겠습니다”라고 답한다면 어떨까?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채용 면접만 벗어나면 저런 사고방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것이 현실이다. 직장인들에게 “일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일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돈 받으려고 하는 거지”라는 답이 너무 쉽게 나온다. 일하면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겁니까”라며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는 말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직장인이라면 이런 현실을 당연하게 여겨야 할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시점에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다. 여기서의 ‘의미’는 적성과 재미의 차원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사회를 연결시키고, 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차원을 포함한다. 그런 마음은 조직에서 하는 경험에 따라 줄거나 사라질 수 있다. 자율성 없이 수동적으로 일해야 할 때, 공정성과 윤리적 측면에 실망할 때,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일이란 게 뭐 별거 있겠어? 월급이나 받자” 하는 식으로 돌아서게 된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보호하려 마음의 벽을 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사망한 국민권익위원회 국장대리는 아마도 그런 벽을 치는 데 실패한 사람일 것이다. 20년간 부패방지 업무만 해왔다는 그는 최근 맡은 업무들로 괴로워했고 특히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종결 발표 당시 힘들어했다고 한다. “지난 20년간의 내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에게 이 일이 단지 생계수단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죽음을 놓고 야당이 대통령 부부에게 ‘살인’이라고 따지자 대통령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론화되곤 있으나 그 중심에 ‘일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인데 상부의 지시대로 일하는 게 정상 아니냐는 사회적 인식이 더 크다면 이 죽음은 결국 별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럴 거라면 처음부터 그런 인재를 원하는 척이나 말지. 국민권익위는 부패방지, 인권위원회는 인권보장,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골라서 뽑아오지 않았나.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조직의 목적에 반하는 업무를 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아무 잘못도, 죄도 아닐까? 사회에 작은 기여라도 해보고 싶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을 짓밟는 행위,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며 월급날만 바라보게 만드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까? ‘살인’이 과하다면 다른 답이라도 내놓았으면 좋겠다.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죽이는 죄목을 뭐라고 해야 하는지 말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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