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뒷면 대형 충돌구, ‘한국인 이름’ 붙었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천문학자
경희대 연구진 신청, IAU 승인
자기장 유독 강해 과학적 가치
달 표면에 운석이 부딪히면서 생긴 구덩이인 ‘충돌구(크레이터)’에 처음으로 한국이 지은 이름이 붙었다.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으며, 뛰어난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인물의 이름을 딴 ‘남병철(Nam Byeong-Cheol) 충돌구’이다.
19일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소속의 다누리 자기장 탑재체 연구진은 국제천문연맹(IAU)이 달 뒷면의 한 대형 충돌구에 ‘남병철 충돌구’라는 명칭을 붙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달에는 약 30만개의 충돌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1659개에만 별도 명칭이 있다.
남병철 충돌구라는 이름은 2022년 해당 충돌구에 대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크루즈캠퍼스 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하던 경희대 연구진이 IAU에 신청한 것이며, 지난 14일 IAU 최종 심사를 통과했다. 달 충돌구에 한국이 지은 이름이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희대 연구진이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와 논의한 끝에 선정한 인물인 남병철(1817~1863)은 조선 후기의 뛰어난 학자이다. 조선시대 외교와 문화 업무 총책임자인 예조판서, 왕명과 관련한 핵심 사무를 관리하는 예문관·홍문관의 최고위 관직인 대제학을 지냈다.
특히 남병철은 천문학과 수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 다양한 책을 저술했다. 2차 방정식 풀이법을 담은 <해경세초해>와 천문 연구 서적인 <추보속해>가 대표적이다.
특히 1859년 간행한 <의기집설>에는 천체 움직임을 측정해 시계 역할을 했던 ‘혼천의’ 등 천문기구의 구조와 사용법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경희대 연구진은 IAU에 천문학자로서 남병철의 업적을 설명하기 위해 <의기집설>의 의미를 다룬 논문을 참고 자료로 제출했다. IAU는 과학자로 증명된 인물이어야 달 충돌구 이름으로 사용하도록 승인한다.
경희대 연구진이 아직 명칭이 없는 수많은 달 충돌구가 있는데도 해당 충돌구를 콕 집어 이름을 붙인 데엔 이유가 있다.
지름이 132㎞로 서울과 대전 직선거리와 비슷할 정도로 규모가 거대한 남병철 충돌구는 운석이 부딪힐 때 생긴 큰 충격 때문에 내부 자기장이 주변보다 유독 강하다. 이 때문에 이름이 없을 때에도 우주과학계의 관심 대상이었다. 연구진은 해당 충돌구에 이름을 따로 붙여도 될 만큼 과학적인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연구진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달 정찰 궤도선(LRO)’이 찍은 사진을 제공받아 남병철 충돌구를 분석하고 있다. LRO는 달 주변을 2009년부터 돌고 있는 일종의 인공위성으로, 월면을 찍는 카메라를 장착했다. 연구진은 “앞으로는 2022년 달 주변에 투입돼 운영 중인 한국의 궤도선 ‘다누리’를 활용해 추가 관측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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