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13> 부산 고촌리 명문토기

김동윤 동삼동패총전시관 학예연구사 2024. 8. 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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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는 고고학과 역사학을 들 수 있다.

고고학이 유적과 유물을 통한 물질자료를 대상으로 한다면, 역사학은 문헌자료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차이가 있다.

이러한 고촌리 유적에서는 다양한 명문이 새겨진 유물이 출토됐는데, 특히 '갑화(甲火)' '갑(甲)' 자가 새겨진 토기(사진)가 주목된다.

기존 '고촌리 유적'과 함께 어떤 풍부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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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업 전문 제작집단의 거주 공간, ‘갑화’‘갑’ 문양으로 당시 지명 유추

인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는 고고학과 역사학을 들 수 있다. 고고학이 유적과 유물을 통한 물질자료를 대상으로 한다면, 역사학은 문헌자료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차이가 있다. 연구 대상이 달라 두 학문 간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함께 연구가 가능할 때 역사는 더욱 풍부한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부산 도시철도 4호선 고촌역에서 종점인 안평역으로 향하다 보면 도시 속 비교적 한적한 풍경 사이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모습을 마주한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2000년대 초 이 일대에서는 발굴조사가 한창 이뤄졌다. 조사 결과 이곳 ‘고촌리 유적’은 수공업 전문 제작 집단의 거주 공간이자 생산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촌 집단’은 기원후 3세기 후반부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 전기까지 칠기·목기·골각기·유리 등을 전문으로 생산하였다.

이러한 고촌리 유적에서는 다양한 명문이 새겨진 유물이 출토됐는데, 특히 ‘갑화(甲火)’ ‘갑(甲)’ 자가 새겨진 토기(사진)가 주목된다. ‘갑화’가 새겨진 토기 조각은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명문이 없었다면 평범한 토기 조각 중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갑화’라는 글자가 출토되면서 ‘갑’자는 원래 ‘갑화’를 의도하였고 축약해서 써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갑화’라는 명문은 무엇을 뜻할까? 고고학이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에 역사학이 그 해답을 찾아주었다. 명문에 부합하는 문헌기록이 ‘삼국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이었지만 경덕왕 때 개명되었다. 동래에는 영현(領縣)이 둘이 있는데, 동평현의 본래 명칭은 대증현이었으며, 기장현은 갑화양곡현이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757년(경덕왕 16년) 이뤄진 전국 단위의 대대적인 행정체계 정비에 대한 기록이다. 이를 토대로 고촌리 집단이 갑화양곡현에 속했다는 사실과 당시 어느 정도의 정치사회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고고학적으로 본다면 이 유물이 7세기 정도 시기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경덕왕대 지명 개편이 이뤄지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이 ‘갑화(양곡)’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산박물관은 고촌 집단 구성원의 무덤군인 고촌리 고분군 발굴조사를 곧 시작할 예정이다. 기존 ‘고촌리 유적’과 함께 어떤 풍부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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