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보호주의’ 대 ‘데이터 보호’ [세상읽기]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라인 사태’를 둘러싸고 한국에서는 ‘데이터 보호주의’에, 일본에서는 ‘데이터 보호’에 방점이 찍혔던 점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실제 이 사안에는 두 개념이 뒤엉켜 있어 누구의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초점이 갈라졌다. 그렇다면 둘은 뭐가 다를까?
먼저 ‘데이터 보호주의’란 국가 안보, 데이터 안보, 데이터 주권, 개인정보 보호, 산업정책 등을 이유로 데이터의 현지화(국내 저장·처리)를 요구하거나 국경 간 이동을 규제하는 것이다. 2021년까지 39개국에서 도입된 총 92건의 데이터 현지화 조치의 절반 이상이 직전 5년간 도입된 데서 알 수 있듯 날로 증가 추세다. 야네스 크렌 등(2018)이 조사한 64개국의 2017년 기준 관련 순위는 러시아와 중국이 1, 2위로 앞서고 한국도 6위로 높은 편이다. 특히 중국은 ‘데이터보안법’ 제정, ‘국가기밀보호법’과 ‘방첩법’ 개정 등에 주력했다.
‘데이터 보호’는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 데이터 주권, 공공성 확보, 국가 안보 등을 추구한다. 유럽연합(EU)은 세계 최초로 2018년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제정하고 2024년에는 인공지능(AI) 관련 위험에 대한 포괄적 규제인 ‘유럽연합 인공지능 법안’을 승인하는 등 이 흐름을 주도해왔다. 유럽연합의 정반대편에 서 있던 미국에서도 국가 안보를 내세운 보호주의 기조가 감지된다. 미 하원은 ‘틱톡 강제 매각법’ ‘적성국으로부터의 미국인 데이터 보호법’ 등을 통과시켰고, 행정부는 인공지능 개발용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금지, 우려국의 민감 데이터 접근 금지 등에 관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세계무역기구의 복수국 간 전자상거래 협상에서도 미국은 유사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렸으리라. 그렇다. 둘의 구분은 쉽지 않다. 라인 사태에 대한 일본의 대응도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내가 하면 데이터 보호, 네가 하면 데이터 보호주의’일까. 틱톡 강제 매각의 테이프를 끊은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조 바이든, 카멀라 해리스도 대선을 겨냥해 틱톡 계정을 팠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의 본산 미국의 틱톡 규제 의도도 의뭉스럽다. 강대국의 데이터 보호를 내세운 데이터 보호주의로 관련 시장과 규범 및 표준은 분절화 위기에 처했고, 그들 사이에 낀 나라는 파장 분석에 분주하다. 유럽연합의 일반정보보호규정이나 인공지능법 제정에도 역내 관련 산업 육성 및 규범과 표준 주도 의도가 숨어 있다.
결국 둘의 차이는 말장난이란 냉소로 접기에는 우리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위 조사의 순위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이 웅변하듯 한국은 데이터 보호주의가 보호보다 우위에 선 나라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의 회원정보를 중국의 18만여 업체에 무단 제공하고, 카카오페이는 지난 6년간 회원 동의 없이 중국 알리페이에 4천만명 이상의 회원정보를 542억건 넘긴 사건이 드러났다. 비로소 우리도 이 지점에서 일본의 라인 이용자들과 공명하게 된다. 더욱이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하고 초거대 언어모델을 보유한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 데이터 보호는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에도 필수다. 이것이 데이터 보호주의와 데이터 보호를 구분하는 연유다. 주요국이 전자로 충돌하면서도 후자를 위한 협력에 나서는 연유다.
라인 사태 이후 한국 정부는 데이터 보호주의에 무기력했고 데이터 보호에 무관심했다. 특히 양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정위)는 아태 지역 11개국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 때 정보 공유나 공동조사 등의 협력을 목표로 내건 ‘국경 간 프라이버시 집행 협정’(CPEA) 회원국인데도 이는 사태 해결에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한국 개정위는 일본 개정위의 공동조사 문의 메일을 받고도 그 형식을 문제 삼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만일 한-일 관계 개선을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현 정부가 일본의 데이터 보호주의에는 강경 대응하되 데이터 보호 협력 카드를 내밀었다면 일본이 이를 거부할 명분이 있었을까. 쓰라린 복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라인 사태는 한국이 직면한 새로운 난제를 알린 요란한 경고음이다. 데이터 보호주의와 데이터 보호의 갈림길에서 한국의 길을 찾기 위한 공론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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