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 잠들면 카드 '슬쩍'… 돈 빼내 코인투자한 복지사
사망후 장례비 뻥튀기 청구
유산까지 뒤져 몰래 털어가
상속재산 등 주먹구구 관리
요양시설 52곳에 시정조치
"공공신탁 등 제도정비 필요"
◆ 요양시설 복마전 ◆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A씨는 무연고 치매 환자가 잠든 사이 현금카드를 몰래 가져다가 21차례에 걸쳐 약 700만원을 빼냈다.
치매가 있어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환자들은 보통 통장에 비밀번호를 적어 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A씨는 아무런 제약 없이 돈을 빼내 코인 투자에 썼다. 고령의 무연고자는 재산이 제대로 관리되는지 확인할 가족이 없다는 점을 노렸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A씨에게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강원 원주에 위치한 한 요양원 B원장은 시설에 입소해 있던 무연고 노인이 사망하자 계좌에 있던 600만여 원을 시설 후원금 계좌로 몰래 이체했다. 이것 말고도 비슷한 방식으로 후원금으로 빼돌려 시설운영 경비로 사용한 돈이 2200만원 더 있었다.
이처럼 무연고 노인의 재산이 누군가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무연고 노인은 자기 재산을 살필 기력이나 정신이 없고 도움받을 가족 없이 사실상 방치되다 보니 제3자가 작정하고 돈을 가로채면 적발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연고가 없는 상태로 요양시설 등에서 사망하거나 정신이 온전치 않은 노인이 남긴 재산은 '눈먼 돈'처럼 여겨지는 사례도 많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가족관계 단절 등의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다. 요양시설에서 사망하는 무연고자가 지난해 처음으로 5000명을 넘어섰다.
무연고 사망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오는 지원금 등을 모아 사망 이후 유류금으로 남기는 경우가 많다. 상속인이 나타나지 않는 사망자의 재산을 처리하려면 법원에서 선정하는 관리인을 선임하는 식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부 요양시설은 이런 절차를 지키지 않고 노인의 유산을 사적으로 유용했다.
보건복지부가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북의 한 요양시설은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금품을 시설운영비로 사용하다 주의 조치를 받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족으로부터 양도각서를 받았다고 했지만 이것이 시설운영비로 사용할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법률 자문을 받고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요양시설에서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노인이 남긴 재산을 빼돌리기도 한다.
사회복지시설 원장 C씨는 2018년 장애가 있던 무연고자가 숨지자 실제 장례 비용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한 것처럼 꾸며 차액을 유류재산에서 보전받았다. 그는 올해 6월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요양시설은 상속인에게 계좌를 인계하는 과정에서 장례 비용 등에 얼마가 들어갔는지 증빙서류를 남기지 않아 복지부에서 주의 조치를 받았다.
이처럼 무연고 노인의 재산을 착복하거나 의심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복지부의 무연고자 유류재산 실태조사는 2020년 이후 멈춰선 상태다. 올해 1월 기준 장기 요양시설 숫자만 전국적으로 6280곳에 이르는 만큼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남긴 재산을 착복하고 유용하는 문제는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며 "무연고 노인이 사망한 후에도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를 보완해 재산을 가로채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 상속재산 처리 과정이 복잡한 것도 문제다. 요양시설은 물론이고 지자체도 선뜻 나서지 않으려 하다 보니 부정이 발생할 소지가 커진다. 복지부 조사 결과 유류재산 처분까지 길게는 7년 넘게 소요된 일도 있었다.
한 요양시설 관계자는 "상속재산 관리인을 선임해도 재산 청산공고, 상속인 수색공고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하는 게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잔여재산이 500만원 이하이면 잔여재산 목록을 제출한 뒤 지자체에 귀속되지만, 500만원 이상이면 상속재산관리인을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상속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가에 귀속돼 사회복지 사업 등에 활용된다.
보건 당국은 2021년 법 개정을 통해 장기 요양기관에서 머물다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의 재산이 500만원 이하일 경우 상속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6개월 이내에 지자체에 귀속시키도록 했다. 그러나 사망자가 남긴 재산이 얼마나 되고 상속인에게 연락을 취했는지 등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부실해 실제로 발생하는 사기·횡령 규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박은하 용인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취약한 무연고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경제범죄가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정부기관이 주도해 무연고 노인이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공공신탁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범 기자 /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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