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무빙', 변산 바닷가에 펼쳐진 시네마 천국…올해 테마는 '사랑'

김지혜 2024. 8. 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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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제2회 팝업 시네마: 부안무빙'(Pop-Up Cinema: Buan Moving)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 난데없이 소나기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발을 동동 굴린 건 행사를 준비하는 무대 아래 관계자들뿐, 객석에 자리한 관객은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여러분들이 덥다고 하셔서 비를 조금 뿌렸습니다"

행사의 문을 연 전혜정 예술 총감독도 특유의 위트로 객석을 가득 채 관객들을 맞았다. 주황빛 노을이 붉게 익어가는 낙조의 시간, 때마침 내린 비는 더위에 한껏 달아오른 사람들의 몸을 식혀줬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전북 부안군 변산해수욕장 일대에서 제2회 '부안무빙'이 행사가 열렸다. '부안무빙'은 팝업스토어 개념을 영화제에 도입한 새로운 콘셉트의 문화 축제다. 매해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와 전시를 선정하여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의 테마는 '사랑'으로 '가려진 시간', '그해 여름', '파이란' 등의 한국 멜로 영화가 상영됐다. 여기에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 배우 박정민의 연출 데뷔작인 단편 영화 '반장선거'도 관객과 만났다. 행사가 열린 내내 해변에서는 친환경 소재로 작품 활동하는 작가·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미술품도 전시하며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를 실천했다.

부안무빙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영화가 만나서 이뤄내는 시너지에 주목한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변산해수욕장, 낙조의 장관이 펼쳐지는 일몰 시간대가 되면 어김없이 영화가 상영됐다.

자연과 영화와 만나는 이 시간은 '부안무빙'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가장 로맨틱한 풍경이다. '생거부안'(生居扶安 살아서는 부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준 시각적인 황홀경이다.

과거에 봤던 작품이라도 언제, 어디에서 다시 보느냐에 따라 심상이 달라질 수 있다. 올해 선보인 3편의 한국 장편 영화들은 개봉 당시 뜨거운 화제성을 가졌던 작품이지만 흥행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이다. 좋은 영화는 반드시 관객이 알아본다. '부안무빙'의 3일은 영화의 재미와 가치를 다시금 깨닫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개막작은 엄태화 감독이 연출한 '가려진 시간'이었다. 은유와 상징이 가득하며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작품인 만큼 영화 상영 후에는 다채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이날 엄태화 감독은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세월호를 은유한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질문에 "제 고향이 안산이기도 하고,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피해자가 있어서 시나리오를 쓸 때 영향을 받았다. 지금 다시 영화를 보니 더 세게, 슬프게 다가온다"고 답했다.

독립영화 '잉투기'로 장편 영화에 데뷔한 엄태화 감독에게 '가려진 시간'은 두 번째 장편 영화이자 첫 상업영화였다. 첫 번째 영화가 '현피'(현실에서 만나 싸움을 벌인다라는 뜻의 은어)라는 온라인 문화를 소재로 한 발찍한 작품이었던데 반해 두 번째 영화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판타지 영화라는 점에서 큰 변화로 다가왔다.

이에 관한 질문에 엄태화 감독은 "'잉투기'도 현실과 비현실이 구분이 안되고, '가려진 시간'도 장르는 다르지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내게는 두 작품이 상반된 작품이라거나 다른 노선의 작품이라고 생각지 않았다"고 답했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380만 흥행에 성공한 엄태화 감독은 "현재 호러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내년 4월에 촬영하는 것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 중이다. 기대해 달라"고 차기작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해 여름'이 상영된 둘째 날 밤에는 객석에서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다.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에 시대의 비극이 어우러지며 감정이 고조됐고, 엔딩에 다다르자 관객들은 하나둘씩 눈시울을 붉혔다.

영화를 연출한 조근식 감독은 상영 후 열린 GV에서 "내겐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이 영화를 만들 때 정말 공을 들였었는데 그 당시엔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상심이 컸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야외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영화를 함께 보니 촬영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나 추억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현재 조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며 영화인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에 찍은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은 남다를 터였다. 어쩌면 이 작품이 선사한 감동은 영화를 만든 이보다 이 자리에서 영화를 본 관객에게 더 크게 다가갔을지 모른다. 18년 전 이병헌과 수애, 두 배우가 품어낸 매력과 열정은 영화라는 기록으로 남겨져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영화의 변치 않은 힘이자 마법이다.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행사도 마련됐다. 변산해수욕장 워케이션센터에서 진행된 '필름토크' 행사는 이색적이었다.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박정민 배우,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가 패널로 참여해 한국 영화 명장면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변산'으로 이 도시와 인연이 남다른 박정민은 이 행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출한 단편 영화 해변에서 상영하며 감독으로서 관객과 만나기도 했다.

박정민이 주인공인 두 행사는 팬들의 남다른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인근 지역의 관객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일정에 맞춰 내려올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이며,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씨네필인 박정민은 한국 영화를 빛낸 고전에 대한 애정, 일반 관객이 알기 힘든 영화의 뒷이야기를 관객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나누며 남다른 입담을 뽐냈다.

'부안무빙'은 여타 영화제와는 다른 개념의 문화축제다. 영화제와 동일한 개념으로 이 축제를 평가한다면 규모와 수익성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획의 의미와 콘텐츠의 질을 들여다보면 이 축제가 그리는 비전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모든 영화와 전시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부안을, 변산해수욕장을 찾는 가벼운 발걸음과 뜨거운 열정만 있다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다. 전국의 아름다운 스팟을 찾아 움직이며(moving), 지역별 테마에 맞는 영화(movie)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는 전혜정 총 예술감독의 원대한 기획은 깊이와 넓이를 키워나가고 있다.

'부안무빙'은 이제 두 번째 닻을 올렸을 뿐이다. 이 축제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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