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지방도시와 기업의 공생

황인혁 기자(ihhwang@mk.co.kr) 2024. 8. 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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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은 경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여전히 경주 시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청년층을 지방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강력한 해법은 기업 유치다.

하지만 기업들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K기업가정신의 발원지도 진주, 울산, 수원, 고창 등 상당수가 지방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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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지방소멸 막으려면
기업 끌어들일 유인책 필수
지자체는 최선 다하고 있나
지방이전 기업에 감동 줘야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여전히 경주 시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많은 한수원 임직원들이 주말만 되면 수도권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도 상당수다.

한수원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본사 신사옥 용지를 선정할 당시 경주 지역 주민들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오랜 논란 끝에 낙점된 곳이 지금의 동경주다. 경주 시내에서 차로 40여 분 떨어진 동경주로 결정되자 한수원 직원들은 산으로 둘러싸인 절간에서 회사 생활을 하게 됐다고 푸념했다.

학교, 병원, 쇼핑몰 등 정주 여건을 제공해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법이다. 허허벌판에 본사 위치를 정해놓고 직원들이 정착하기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잘못된 설계다.

이곳 경주에서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경영학자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지난주 한국경영학회와 매일경제신문이 공동 개최한 한국경영학회 융합학술대회의 대주제가 '지방시대를 여는 한국경영'이었는데 여러 석학들이 지방과 기업의 공생을 강조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청년층을 지방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강력한 해법은 기업 유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천년고도 경주의 인구 감소를 통렬하게 지적했다. 신라 전성기 때 경주 인구가 100만명이었는데 지금은 고작 25만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에선 해마다 1000명이 태어나지만 사망자가 2500명을 넘어 가파른 자연 감소 추세를 막을 길이 없다. 이 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지방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대한민국 발전이 어렵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렵사리 투자를 결심한 기업을 상대로 지방 발전 기여금을 요구하거나 사사건건 규제를 들이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국 텍사스는 기업 투자의 천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파격적으로 낮은 세율과 탈규제 덕분이다. 테슬라 본사가 텍사스로 이동하고 애플, 구글, 아마존, 삼성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주요 공장과 연구 거점을 세웠다. 특히 오스틴 인구는 꾸준한 증가세를 거듭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니 기업이 저절로 유입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니 사람이 몰려드는 선순환 흐름이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기업인은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지방 이전 기업에 법인세뿐 아니라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춰주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들 기업에 더 큰 보따리를 안겨주는 걸 주저해선 안 된다. 지방 도시의 존립이 걸린 문제다.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제조기업들에겐 친환경·무탄소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미래 생존을 좌우할 과제다. 세계적인 환경 규제 장벽을 넘기 위해서다. 미래형 에너지인 소형모듈원전(SMR)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주민 설득에 발 벗고 뛴다면 어떨까. 여러 기업들이 그 지자체와 손잡고 제조공장을 세우려 할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지방과 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경북만 해도 구미는 전자, 포항은 철강, 대구는 섬유산업의 메카였다. 한국만큼 인적자원이 우수하고 부품 생태계가 다채로운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 K기업가정신의 발원지도 진주, 울산, 수원, 고창 등 상당수가 지방 도시다.

지방 소멸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방에 기업을 끌어들일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실행이 있어야 한다. 합계출산율이 0.72명인 한국에선 이제 어떤 인구 대책도 극단적이지 않다.

[황인혁 산업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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