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구독경제 생태계 규제는 신중하게

2024. 8. 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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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집에서 보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구독경제가 가져온 편리함과 효율성은 너무도 분명하다.

과거에는 비디오테이프를 일일이 구매 혹은 대여해야 했던 반면, 현재의 구독경제에서는 넷플릭스나 티빙과 같은 OTT를 구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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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집에서 보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구독경제가 가져온 편리함과 효율성은 너무도 분명하다. 과거에는 비디오테이프를 일일이 구매 혹은 대여해야 했던 반면, 현재의 구독경제에서는 넷플릭스나 티빙과 같은 OTT를 구독해 본다. 단순히 매체의 차이가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기준은 아니다. 진정 의미 있는 발전은 소비자가 매번 개별 콘텐츠에 대가를 지불하는 '1회성 구매경제'에서 사업자가 제공하는 수많은 콘텐츠에 일정 구독료를 정기적으로 선지급하고 접근할 수 있는 '구독경제'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구독경제 소비자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만큼 시청할 수 있고,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 선택하는 고민과 시간을 줄여주는 맞춤형 큐레이션 서비스까지 제공받는다. 개별 콘텐츠를 구매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한 구독료로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한편 사업자도 구독자와의 지속적인 거래관계를 기반으로 신규 고객 유치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으며 안정적 수익을 담보할 수 있어 양질의 콘텐츠 공급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 등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이 가능하다. 아울러 고객 관계 지속에 따른 고도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한마디로 소비자와 사업자 둘 다에게 윈윈인 모델이다.

그동안 여러 월 단위 구독 서비스, 예를 들어 IPTV, 전자책, 오디오북, OTT 등은 사업자가 자신의 서비스 특성을 고려해 이에 맞는 해지와 환불 방식을 소비자에게 제공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각에서는 소비자가 한 달이 다 가기 전에 해지하면 사업자가 예외 없이 잔여기간 전부에 대해 환불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린다. 언뜻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는 것처럼 들리나 21세기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과거 20세기 규제의 틀에서 재단해 가두려는 것은 아닌지, 득보다 실이 큰 규제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만일 구독 도중에 해지하는 경우 잔여기간에 대해 환불해주도록 하는 것이 과연 사회·경제적으로 바람직한가를 생각해보자. 이는 해지 시점까지의 서비스 사용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고 이 사용량만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전제하에서 과거 판매 개수당 과금하던 1회성 구매경제에서의 과금 방식이다. 이 경우 정액 선지불 및 일정 기간 언제든 사용 가능성이 전제된 구독경제의 장점이 일거에 사라진다. 채산성의 악화를 경험하게 될 사업자들은 구독료 인상 혹은 개별 콘텐츠 단위나 일 단위 과금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콘텐츠 투자도 줄어들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짧은 기간에 몰아서 엄청난 양을 이용한 후 바로 해지하는 등 거의 월 구독료 전부를 환불받으려는 유인이 증가해 블랙컨슈머의 양산도 불가피할 것이다.

환불을 무조건 강제하는 규제는 결국 구독경제의 장점을 희석시켜 소비자 후생을 낮출 것으로 우려된다. 21세기 혁신적 구독경제를 붕괴시켜 다시 과거의 1회성 구매 모델로 회귀시키는 것은 아닌지, 소비자를 포함한 모든 산업 참여자 간에 효율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균형 상태를 심각히 훼손할 우려는 없는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면밀한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새롭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도입과 정착은 매우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前 한국유통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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