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잔소리는 과거 자신에게 하는 후회

한겨레 2024. 8. 1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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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방학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모와의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날 여지도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딸을 향한 남편의 잔소리는 그 대상이 딸이 아니라 사실 과거의 자신이었다.

남편이 딸에게 하는 잔소리는 남편이 자신의 삶에서 풀지 못하고 남아 있는 과제들이었다.

남편과 내 삶에 남아 있는 과제가 저마다 달랐기에 우리는 똑같은 사안을 앞에 두고도 딸에게 하는 잔소리의 내용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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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방학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모와의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날 여지도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우리집도 마찬가지였는데 지난주엔 남편 여름휴가로 네 식구가 온종일 같이 있으면서 딸과의 신경전이 수시로 불거지곤 했었다. 특히 남편과 딸이 자주 부딪혔는데 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 깨달은 바가 있었다.

처음엔 중년 아저씨와 사춘기 여자애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범위가 적어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그것도 아니다. 애초에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은 물어보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주 부딪히지?

남편 잔소리가 발단이었다. 아니, 잔소리의 내용이 문제였다. ‘잔소리’야 부모 된 자들의 필수 탑재 아이템 같은 것이니 ‘뿌리 뽑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좋은 부모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잘해야 했다. 잔소리의 내용이 자녀 마음에 온전히 가닿을 수 있는 내용이어야 했다. 그런데 남편의 잔소리는 딸 앞에서 허공에 흩어졌다. 딸 마음에 가닿는 내용이 아니라 남편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후회를 딸에게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바라보니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었다. 딸을 향한 남편의 잔소리는 그 대상이 딸이 아니라 사실 과거의 자신이었다. 딸 나이의 ‘어렸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편은 딸에게 대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들이었지만 딸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했다. 딸은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타인’이기 때문이다.

십 여년 전 읽었던 노경선 박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떠올랐다. 오래전 읽었던 터라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시 읽고 느꼈던 바를 한 줄로 요약하면 ‘자녀를 잘 키우고 싶으면 부모가 잘 살면 된다’였다. 부모가 자신 삶의 과제를 잘 수행해 나가면 자녀는 알아서 잘 자랄 것이라는 게 핵심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이 딸에게 하는 잔소리는 남편이 자신의 삶에서 풀지 못하고 남아 있는 과제들이었다.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내 모습을 돌아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내 삶에서 내가 풀지 못하고 남아 있는 과제를 딸에게 강조하곤 했다. 남편과 나는 딸에게 우리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달랐다. 남편과 내 삶에 남아 있는 과제가 저마다 달랐기에 우리는 똑같은 사안을 앞에 두고도 딸에게 하는 잔소리의 내용이 달랐다. 서로가 꽂힌 부분이 달랐다. 우리는 딸에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과거를 향해 외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서 또 한 번 다짐했다. 나부터 잘 살아야겠다. 아니, 나나 잘 살아야겠다. 그래야 딸도 ‘알아서’ 잘 살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잔소리로는 성장하지 않지만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는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철썩같이 따라서 배운다. 그것처럼 무서운 게 없다. 또다시 다짐만으로 끝나지 않도록 오늘은 내가 잘 살 방법이나 궁리해 보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류승연 ·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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