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안정’ 중심 대통령실 연금개혁안··· “구조개혁안 없으면, 논쟁만 반복될 것” 비판
대통령실이 이달 말 발표예정인 국민연금 개혁안이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등의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정부가 ‘재정안정’에 초점을 맞춘 개혁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2년간 공론화 과정에서 논의되지 않은 내용을 정부가 들고 나오는 것인데, 구조개혁이 뒤따르지 않으면 재정안정 대 노후소득보장을 놓고 지난한 논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대통령실과 국회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연금개혁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나이 든 세대일수록 보험료율을 더 빨리 올리는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연금을 내는 이가 줄어 기금이 고갈될 상황이 오면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같은 모수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출산·군복무 크레디트 확대’ 등이 현재까지 알려진 개혁안의 핵심이다. 대통령실은 이같은 안을 통해 기금 고갈 시점을 현행 예상 시점인 2055년보다 30~40년 이상 늦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이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개혁안은 여태까지의 연금 논의를 고려하면 재정안정에 초점을 맞춘 모수개혁안으로 볼 수 있다. 모수개혁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연금 수급 연령 등 재정 변수들을 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 연금개혁이다. 구조개혁은 모수개혁에 더해 기초연금 등 각종 특수직역 연금과 연계해 노후소득보장을 고려하면서 연금 제도의 틀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약 2년간 거친 연금개혁 공론화를 거쳤으나 아직 국회 여야 간에 소득대체율 모수 조정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나서서 ‘재정안정’에 방점을 찍은 개혁 방향을 제시한 상황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연금개혁이라는 의제를 놓지 않고 먼저 큰 틀을 제시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 위원장은 “앞으로 연금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젊은 층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이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장년층 내에서도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이 있기 때문에, 차등인상안을 추진할 경우 맞춤형 보완조치가 따라야 한다”며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2년간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어느 정도 개혁 방향이 모아진 상황을 건너 뛰고 정부가 새로운 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 비판이 나온다. 여야는 올해 5월 21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연금개혁과 관련해 이른바 ‘더 내고 더 받는’ 모수개혁안 합의 눈앞까지 갔었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은 13%로 인상하는 것까진 여야가 합의했으나, 소득대체율 43~45% 선에서 이견을 보이다가 21대 국회 내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대별 차등보험료율은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에서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는 이야기다”라며 “기존 논의를 건너 뛰고 비현실적인 기금소진 시점 연장(30년)을 제시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달 말 발표될 정부안이 구체적인 수치와 구조개혁 방향까지 함께 제시하지 않을 경우에는 재정안정 대 노후소득보장 구도로 벌어진 지난 2년간의 논쟁만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구체적인 수치들을 다 건너뛰고 큰 방향을 제시해봤자 논의의 공이 국회로 다시 넘어오면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통령실이 기존 논의를 건너뛰고 내놓은 연금개혁안이라면, 추구하는 정책 방향과 국정 철학이 무엇인지와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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