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항공사 중국行 좌석 ‘텅텅’…이유는?
호주 콴타스 "시드니-상하이 좌석 절반이 빈자리"
미중 갈등에 수요 줄고…러시아 우회로 비용 더 들고
러시아 영공 통과 가능한 中항공사와 경쟁서도 열세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과 유럽 항공사들이 중국행 항공편을 대폭 축소했다. 중국을 여행하려는 수요 자체가 줄어든 데다, 러시아 영공 우회에 따른 비용 증가로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탓이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브리티시 항공은 10월부터 런던-베이징 항공편 운항을 중단할 예정이다. 앞서 버진애틀랜틱 항공도 유일한 중국 노선인 런던-상하이 항공편을 더이상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호주 콴타스 항공도 시드니-상하이 운항을 축소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러시아 영공 비행 금지령의 영향은 없지만 해당 항공편은 좌석의 절반 가량이 빈 상태로 운항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엔 중국의 고성장세와 주머니가 두둑한 중국인 관광객이 서방 항공사들에 성장 기회로 작용했다. 2023년 국경 간 이동이 재개되자 서방 항공사들은 과거와 같은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긴장이 더욱 고조됐고, 서방 항공사들은 중국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국으로 향하는 항공편은 운항 축소 또는 중단됐다.
실례로 브리티시 항공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항공편이 (팬데믹으로) 3년 동안 중단됐다가 재개된 이후 런던-베이징 노선은 가장 중요한 노선 중 하나”라며 최근까지도 중국어(만다린어)가 가능한 승무원을 모집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홍콩으로 향하는 항공편을 절반으로 줄인 데 이어 10월부터는 베이징 노선을 완전 중단키로 했다. 상하이 노선은 유지된다.
항공 업계에선 러시아 영공을 우회하면서 비용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했고, 러시아는 보복 대응으로 미국과 유럽 항공사들이 자국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비행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서방 항공사들은 러시아 영공을 우회해야 했고, 비행 시간은 물론 운영 비용이 25~30% 증가했다. 러시아 영공을 통과할 수 있는 중국 항공사들과의 경쟁에서도 열세에 놓이게 됐다.
글로벌 항공정보 제공업체 OAG에 따르면 성수기인 올 여름 유럽과 북미에서 중국으로 가는 국제선 항공편은 2018년 최고치(1만 3000편) 대비 60% 급감했다. 반면 중국 항공사들은 같은 노선에서 서양 경쟁사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럽행 정기 항공편만 1만 4835편으로 2019년 최고치 대비 16% 늘었다.
중국 동방항공은 지난달 상하이-마르세이유 직항편을 신설했고, 중국 남방항공은 최근 광저우-부다페스트 운항을 시작했다. 중화항공은 올해부터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슬롯을 추가 확보했다. DBS의 제이슨 섬 애널리스트는 “러시아 영공을 비행할 수 있는 덕분에 중국 항공사들은 서유럽 노선에서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지난 2월 중국과 직항 왕복 항공편 수를 주당 35편에서 50편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팬데믹 이전 325편과 비교하면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미 항공사들은 더이상 상한을 높여선 안된다며 정부를 상대로 로비까지 펼쳤다. 올해 미국과 중국 간 직항 항공 여행 수요가 팬데믹 직전해인 2019년 대비 76% 급감할 것으로 예측돼서다.
미국항공 운송협회(A4A)는 지난 4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피터 부티지지 교통장관에 서한을 보내 “중국 항공 업계의 성장을 통제하지 않고 불평등한 시장 접근을 계속 허용한다면, 미 근로자와 기업을 희생해 항공편 운항을 중국 항공사로 넘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한 서방 항공사 임원은 “서방 국가들과 중국 간 관계의 성격이 바뀌면서 항공 수요도 감소했다”며 미중 지정학적 긴장 고조가 항공편 축소 또는 중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짚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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