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친구 살해 후 백만장자 행세…살인자도 사랑하게 만든 '리플리' 알랭 들롱[스토리후]

김소연 기자 2024. 8. 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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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가득히' 영화 포스터/사진=유튜브 갈무리

#가난한 주인공 '톰 리플리'는 부잣집 아들 '필립'을 동경하지만 멸시당한다. 필립의 여자친구 앞에서도 지속된 무시와 망신주기에 분노한 '리플리'는 둘만 남은 틈을 타 필립을 살해하고 시신을 바다에 던진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는 필립의 신분증을 위조하고 서명을 흉내내 백만장자의 삶을 훔친다. 필립의 여자친구까지 빼앗은 그는 위태로운 백만장자의 삶을 이어간다.

욕망에 사로잡힌 젊은이의 끔찍한 범죄를 다룬 1960년작 '태양은 가득히'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없었다면 개연성을 부여하기 힘들었을 영화다. 부잣집 아들을 살해하고 그를 대행하는 악인이지만 관객들은 리플리를 이해하고 연민했다.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을 믿어버리는 정신적 상태인 '리플리 증후군' 역시 그가 맡은 역 '톰 리플리'에서 유래했다.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배우'(가디언)이자, '프랑스 영화계의 영원한 스타'(르몽드)인 알랭 들롱이 올해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삶은 대중에 등장한 직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가 주목받았다. 첫 주연 영화인 '태양은 가득히'에서는 빛나는 미모로, 중년에는 폭행, 도박, 마약 등의 이슈로, 말년에는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면서 화제가 됐다.
태양은 가득히 속 '톰 리플리'를 맡은 알랭 들롱/사진=유튜브 갈무리
향년 88세 일기로 세상 떠나…'옴므 파탈'의 대명사, '리플리 증후군' 주인공
18일(현지시간) AFP, 르몽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알랭 들롱은 자택에서 가족들이 함께 있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사인은 발표되지 않았다.

그의 외모만큼이나 생애는 화려했고 항상 이슈를 몰고 다녔다. 첫 주연작인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 담긴 25살 알랭 들롱의 리즈시절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다.

조각같은 외모에 다부진 몸, 서늘한 눈빛은 치명적인 매력의 나쁜 남자, '옴므 파탈'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다.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을 믿어버리는 정신적 상태인 '리플리 증후군' 역시 '태양은 가득히' 속 그의 배역 '톰 리플리'에서 유래한 단어다.

한창 활동하던 1970년대, 머나먼 한국의 꼬마들도 '아랑 드롱'을 알 정도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로 통했다.

칸 영화제 포스터/사진=유튜브 갈무

어린 시절, 어머니가 유모차에 '만지지 마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붙여야 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미모를 자랑했다. 젊은 시절에는 알랭 들롱이 파티장에 들어서면 그를 쳐다보느라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그가 배고파서 음식을 쳐다보면 종업원이 음식을 주고, 옷을 쳐다보면 옷을 줬다는 말들이 회자했다.

그러나 치명적인 그의 미모는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됐다. '잘생긴 배우'라는 타이틀을 벗기 위해 수년간 싸워왔다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밝혔을 정도다. 자신의 외모를 넘어서는 연기력을 갖추는 게 일생의 목표로, 다양한 명장들과 작업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탈리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태양은 외로워'(1962), 프랑스 명감독 르네 클레망의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미국 감독 조셉 로지의 '고독한 추적'(1976), 프랑스 스릴러 귀재 자크 드레이의 '볼사리노'(1970), 두치오 테사리의 '조로'(1975) 등 1960년대 프랑스 영화 전성기 때부터 50여 년간 90여 편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대다수가 주연작이다.

덕분에 '프랑스 영화의 전설'로도 불리며 1991년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199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명예 황금곰상을,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선 가정 폭력 논란에도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들롱의 젊은 시절 사진을 게시하며 그가 "프랑스의 기념비적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팬도 많고 안티도 많았다
폭행한 동거인과 알랭 들롱의 모습/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뛰어난 외모에 연기력도 갖춰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지만, 그는 안티 역시 많은 배우다.

외모에 걸맞은 바람둥이였던 것은 물론, 1960년대 경호원 살인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분류돼 수사를 받았다. 결정적 증거가 부족해 7년간의 공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강도 높은 수사를 받을 정도로 유력한 용의자였다.

그는 폭행 전과도 있다. 30살 연하의 파트너, 로잘리 판 브레멘을 폭행해 갈비뼈 8대와 코뼈를 두 차례 골절시킨 일화는 유명하고, 아들인 앙토니 들롱을 어릴 때 개와 함께 개 우리에 가둔 일화도 아들의 폭로로 알려졌다.

경호원 살해범으로 수사를 받던 장면/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84년 탈세하려고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 시민권을 따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이고, 동성애 혐오자로도 유명하다.

이에 안티도 많아 그가 2019년 칸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칸 영화제에서 수상 소감으로 그가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오직 내 배우 경력뿐"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말년은 다소 좋지 않았다. 2019년 뇌졸중을 앓은 후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들인 일본인 동거인 히로미 롤린으로부터 정서적으로 학대당했다는 주장이 그의 자녀들로부터 제기됐다. 세 자녀는 "히로미 롤린이 아버지를 가족으로부터 격리시킨다"며 "아버지 대리인을 자처해 모든 대답을 자신이 하고 있고 통화와 우편물 등을 가로채려 한다"고 고소했다.

2022년에는 안락사를 결심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그는 마침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 머물고 있었고 재산 정리를 마무리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그러나 결국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년 후인 지난 18일 사망했다.

'세기의 미남'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2013년 5월 25일 66회 칸 영화제의 ‘태양은 가득히’ 복원판 상영에 참석을 한 모습. /사진=뉴스1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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