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를 국립공원으로 만든다면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8. 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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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윈저란 도시가 있다.

세계 자동차 수도라는 디트로이트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입지 덕에 오래전부터 부품산업이 융성했다.

콜드웰족은 다른 곳에 정착지를 마련했지만, 원주민들에게 대지는 곧 영혼과 같은 것이기에 캐나다 정부는 어떻게든 잃어버린 200년을 보상하고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영혼 없이 살았던 200년을 보상하기 위해 영원히 훼손하지 않을 지역을 정하고, 땅과 습지와 강을 원주민에게 되돌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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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출판인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윈저란 도시가 있다. 세계 자동차 수도라는 디트로이트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입지 덕에 오래전부터 부품산업이 융성했다. 공업도시라 환경은 좋지 않지만, 차로 한 시간만 가면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 포인트 필리가 나온다. 그 일대는 원래 콜드웰족이라는 원주민의 땅이었다.

콜드웰족은 강압과 협잡에 휘말려 땅을 잃었다. 땅을 빌려주기로 계약을 맺고 사냥과 채집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더니 백인들이 모든 것을 점거했더란다. 그 후 거의 200년간 정착지 없이 살았다. 최근 그 계약이 불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났다. 콜드웰족은 다른 곳에 정착지를 마련했지만, 원주민들에게 대지는 곧 영혼과 같은 것이기에 캐나다 정부는 어떻게든 잃어버린 200년을 보상하고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마침 윈저시 강가에 오래도록 버려진 너른 땅이 있었다. 20세기 초 자동차 산업 호황기에 제철소와 배후 도시를 건설하려고 기반 공사까지 벌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된 부지였다.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시원하게 밀어버리고 고층 아파트 단지를 짓지 않았을까? 원주민들에게는 ‘리버뷰’가 나오는 쪽으로 한 채씩 선심을 쓴 뒤에, 나머지는 일반 분양을 해서 꿩 먹고 알 먹었노라 내세우지 않았을까?

캐나다 정부는 그곳에 국립도시공원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콜드웰족에게 그 땅을 함께 관리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영혼 없이 살았던 200년을 보상하기 위해 영원히 훼손하지 않을 지역을 정하고, 땅과 습지와 강을 원주민에게 되돌려준 것이다. 이미 원주민들은 제초제를 쓰지 않고 전통적 방식으로 외래 침입종 식물을 몰아내는 등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여름이 느리게도 흘러간다. 서울, 부산, 제주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긴 열대야 기록을 세웠다. 아무런 계획 없이 밀어붙인 소위 ‘의료개혁’ 파동으로 응급실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와중에 온열질환자가 2700명 넘게 발생해 그중 23명이 사망했다. 더욱 암울한 사실은 앞으로 다가올 여름 중 올여름이 가장 시원하리란 것이다. 과학자들이 예측했듯이 더위로 사람이 죽는 ‘폭염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판국에 정부는 서울 집값을 잡겠다고 그린벨트를 푼단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를 심어도 모자랄 판국에 수십년 지켜온 숲을 없애겠다니 제정신인가? 전 정부가 무능해서 집값도 못 잡았다고 큰소리 뻥뻥 치기에 무슨 대단한 실력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고작 그걸 대책이라고 내놓다니!

2019년 스위스 취리히 공대는 유명 저널 ‘사이언스’에 나무를 심어 지구온난화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구상 존재하는 나무가 3조 그루인데, 1조 그루를 더 심으면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3분의 2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그 뒤로 ‘취리히 숲 프로젝트’를 출범시켜 직접 나무 심기에 나섰다. 폭염과 함께 세계 곳곳에 엄청난 산불이 나서 있는 나무마저 까먹는 중이지만, 그건 자연재해다. 수도 한복판에서 숲을 밀어 개발에 나서는 퇴행적인 풍경은 적어도 문명국에서는 보기 어렵다.

그린벨트를 밀고 아파트를 지으면 누가 이익을 볼까? 더우면 아무렇지 않게 에어컨을 켜고, 폭염 속에서 일하다 온열질환에 걸릴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 자들일 것이다. 유튜브에서 들은 숫자를 주워섬기며 기후위기를 즐겁게 개탄하면서도 제 손으로 위기를 불러들인 줄 모르거나, 알면서도 눈감는 자들일 것이다. 기막히게 무능한 정부가 들어선 것을 내심 반기며 뒤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들일 것이다.

캐나다 국민이 우리보다 더 착하거나 우수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세상 어디를 봐도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함께 살자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사회가 있고, 나만 살자는 사람들이 더 활개 치는 나라가 있다. 사회의 기풍과 정부의 방향이 그 차이를 결정한다. 어쩌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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