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청년 다시 밀려드는 '책 읽는 길목' : 독립서점의 경제학
대한민국 문화혈관 복구 프로젝트 4편
지방소멸과 독립서점의 상관관계
서점 없는 지역 공통점 : 소멸 위기
중요한 지역 문화 인프라 담당해
사람을 유입하는 ‘길목’ 될 수도
지방소멸을 경고하는 신호가 깜빡인다. 숱한 정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다. 지방을 수도권처럼 '살 만한 동네'로 만들면 되는데, 대체 어떤 전략을 짜야 하는 걸까. 더스쿠프가 소멸 위기의 해법을 지방 곳곳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독립서점에서 찾았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하는 이들 서점은 뜻밖에도 청년과 사람을 유입할 수 있는 '길목' 역할도 해내고 있다.
한국의 지방이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 이른바 '지방소멸 위기'는 저출생과 인구감소, 수도권 쏠림 현상 문제가 겹쳐 가속화하는 중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부도 소멸을 막기 위해 정책적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방시대를 열겠다"며 올해 42조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해 각종 특구를 조성하고 매력 있는 농어촌을 만들기로 했다.
다만 위기를 차단할 것으로 기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간 지방을 살리겠다며 수없이 많은 균형발전 정책을 쏟아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일자리, 더 좋은 기회를 찾아 국민들은 서울로, 수도권으로 계속 이주 중이다.
그래서인지 지방소멸 문제가 이젠 되돌리기 힘든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보는 전문가도 많다. 생존을 위협받는 마을과 지방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 서점의 위기, 지방의 위기 = 지방소멸 위기 원인을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서울과 수도권은 살 만한 동네고, 지방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살 만한 동네가 되기 위한 조건으론 주거나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를 꼽을 수 있다. 그나마 주거ㆍ교육ㆍ의료는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과 의지로 조성이 가능하다.
문제는 문화 인프라다. '삶의 질'과 직결된 중요한 인프라지만 우리 동네에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만드는 건 정책과 예산만으론 할 수 없다. 아이가 크면 자연스레 학교에 입학하고 아프면 꼭 병원을 가야 하는 것과 달리 문화는 콘텐츠를 누릴 사람을 모아야만 확대 재생산되고, 저변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예산을 쏟으면 초호화 예술회관을 지을 순 있다. 그런데 정작 전문 인력과 콘텐츠는 수도권에 집중돼 운영난이 불가피하다.
문화 인프라의 종류는 여럿이고 그중엔 서점이 있다. 서점은 지역 지식 생태계의 시작점이자 책이 순환하는 장소다. 지역과 밀착한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기도 한다. 문제는 서점 산업 자체가 위기라는 거다. 독서 인구는 갈수록 줄고 있고 온라인 서점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서점 개수는 2484개로 2022년(2528개) 대비 1.74% 감소했다. 국내 서점 증감률은 2011년(-9.5%), 2013년(-9.5%), 2015년(-9.2%), 2017년(-3.1%), 2019년(-3.6%) 매년 소폭 감소 중이다.
이런 측면에서 서점은 소멸 중인 지방과 닮았다. 위기의 서점은 지방의 위기와 맞물린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에선 서점이 아예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는 통계로 입증된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기초지자체 중 서점이 한곳도 없는 곳은 총 10곳(인천 옹진군, 전북 무주군ㆍ순창군ㆍ장수군ㆍ임실군, 경북 군위군ㆍ봉화군ㆍ울릉군ㆍ청송군, 경남 의령군)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10곳 지자체 모두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행정안전부로부터 소멸 위험 판정을 받은 '인구감소지역'이었다. 행안부는 총 89곳 지자체를 선정했는데, '서점 멸종 지역'이 모두 포함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 중 서점이 한곳뿐인 지역은 총 25곳인데, 이중 23곳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됐다. 제외된 2곳 중 1곳인 인제군은 소멸 위기 직전 단계인 '관심지역'에 포함돼 있다. 이처럼 서점과 소멸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인구가 줄면 서점이 사라지고, 서점이 사라지면서 문화 활력이 빠진다는 거다. 전형적인 악순환의 고리다.
■ 서점의 부활, 지방의 부활 = 그만큼 서점은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역에서 사람이 빠져나가면, 서점이 통째로 없어질 만큼 그렇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서점의 부활은 지방소멸을 늦출 열쇠가 될 수 있다.
특히 자본을 앞세운 대형서점이 아닌 독립서점의 효용가치는 크다. 참고서나 베스트셀러를 다루는 일반 서점과 달리 독립서점은 지역과 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치는 데 적극적이다. 이를테면 컬처노믹스(Culturenomics)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다.
가령, 작가를 섭외해 이야기를 나누는 책 행사뿐만 아니라 음악회나 전시회, 강연회 등을 수시로 개최한다. 이를 통해 독립서점은 지역주민의 취향을 서로 연결하고 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전달해주는 사회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독립서점의 역할론이 부각하면서 숫자도 증가세다. 전체 서점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독립서점을 한눈에 모아볼 수 있는 플랫폼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남창우 대표에 따르면 국내 독립서점 수는 최근 5년간 2배가량 늘어났다(2018년 416개→2023년 884개).
지역 독립서점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역의 문화공간을 넘어 청년이나 사람을 유입하는 '길목'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름난 독립서점은 수도권 주민이 지역을 방문하는 계기가 된다. 이들의 반복된 방문은 '생활인구(정주인구 외 지역에 체류하면서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사람) 증가'로 이어진다.
이런 방식으로 문화 콘텐츠가 지역민의 일상에 침투하고 차곡차곡 쌓이면 지방소멸을 차단할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충북 괴산에서 독립서점 '문화잇다'를 운영 중인 천정한 대표는 "시골에 사는 어르신에게도 문화 활동이나 책이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란 걸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이게 우리 서점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독립서점이 일반 서점보다 더 혹독한 경영환경에 놓여있다는 거다. 마진이 남지 않는 불합리한 유통구조 때문에 대부분의 독립서점은 버티는 것마저 쉽지 않다. 독립서점 플랫폼 '동네서점'에 따르면, 독립서점의 숫자는 매년 늘고 있지만 휴ㆍ폐점률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지방이 '살 만한 동네'가 되려면 이들이 맘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지역 문화정책이 시급하다는 거다.
더스쿠프가 '문화혈관' 복구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지방소멸 위기의 해법을 동네 깊숙한 서점에서 찾아보자는 거다. 지역 독립서점의 현황을 포착하고 문제점을 진단해 바로 세우면, 수도권으로 향하는 행렬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
동네서점의 남창우 대표는 "지역의 삶을 뺀 무심한 숫자로 문제를 진단하고, 그 진단으로 펴낸 대책들로 소멸 위기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면서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독립서점에서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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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문학전문기자 | 더스쿠프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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