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34〉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은 문제가 없을까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주장했다. 선도기업은 높은 시장점유율과 매출을 가지고 있다. 핵심 고객 요구에 집중하고 경쟁기업 방어를 위해 품질을 높이고 지킨다. 그 과정에서 기능, 가격 등에 불만을 가진 고객이 생긴다. 높은 품질보다 낮은 가격을 원한다. 많은 기능보다 단순 편리함을 원한다. 여기서 신생기업이 나온다. 품질이 낮더라도 저렴하고 단순하며 편리한 상품을 내놓아 선도기업의 빈틈을 파고든다. 시장에 자리를 잡은 뒤엔 기술혁신을 통해 선도기업의 핵심 상품과 경쟁한다. 선도기업은 혁신에 소홀하지 않았는데 시장우위를 잃어간다. 크리스텐슨의 혁신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처럼 낡은 산업과 시장을 완전히 파괴하고 신산업과 시장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Destruction이 아니고 Disruption이다. 슘페터 혁신보다 완화된 형태의 경쟁전략이다. 선도기업의 약점을 파고들어 작은 시장을 뺏고 기술개발 등 혁신을 통해 큰 시장을 노린다.
혼다는 1950년 이후 북미 오토바이 시장에 진출했지만 실패했다. 혼다 오토바이는 오래 달리면 기름이 자주 새거나 클러치가 빨리 닳아 장거리·상업용 운전에 약했다. 어떻게 했을까. 선도기업이 관심을 두지 않던 단거리·여가용 소형 오토바이 시장을 공략해 성공했다. 그 뒤 기술혁신을 통해 대형 오토바이 시장에 진출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데스크톱 PC보다 성능이 낮지만 휴대하는 작고 이쁜 컴퓨터다. 전화기에서 시작해 인공지능(AI)까지 탑재해 컴퓨터 등 미래시장을 정조준한다. 온라인마켓은 어떤가. 신선한 상품, 저렴한 가격, 편리한 배송으로 대형마트 빈틈을 파고든다. 기술 강점으로 오프라인 마켓도 노리고 있다.
파괴적 혁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도기업이 정부규제, 비용부담으로 인해 즉각 대응하지 못하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저가시장에서 고가시장으로 올라가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신생기업이 내놓은 상품이 선도기업보다 기술, 품질이 좋을 필요는 없다. 선도기업 상품에 식상한 고객을 유혹할 수 있으면 된다. 단순해야 한다. 편리해야 한다. 저렴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규제도 덜 받는다.
선도기업은 왜 신생기업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까. 까탈스런 주요 고객 요구에만 귀 기울여 그런 건 아니다. 선도기업이 되면 의사결정 등 구조가 관료화된다. 좋은 말로는 체계화다. 회의가 많고 길다. 좋은 아이디어에 성능을 높이고 기능을 다양화한다며 군더더기를 붙여 상품성을 잃는다. 인사, 재무, 법무, 감사부서의 간섭이 들어오면 아이디어에 손상이 생긴다. 정부규제도 있다. 좋은 게 좋다고 순응하면 좋은 상품을 내놓기 어렵다. 카카오톡을 보자. 단순, 편리하다. 많은 기능을 넣고 복잡했다면 국민서비스가 되지 못했다.
파괴적 혁신에 문제는 없을까. 슘페터가 제안한 창조적 파괴의 '순한 맛' 혁신에 그친다. 기업가 중심의 접근을 한다. 기업가만 혁신주체로 하면 국가 측면에서 창의력과 혁신총량이 늘지 않는다. AI시대에 일자리가 없거나 창업을 택한 많은 일반생활자가 있다. 그들을 혁신주체로 만들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기업과 세상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파괴적 혁신은 선도기업에 대해 시장우위를 확보하는 것에 그쳐선 안된다. 커지지 않는 파이를 나눠 먹는 것에 불과하다. 전체 산업과 시장을 키우는 전략으로 바꿔야 한다. 혁신주체, 혁신대상, 혁신방법을 근본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다양성을 높여 분야별 작은 산업과 시장을 많이 키워야 한다. 그 성공이 바탕이 되면 큰 산업과 시장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야 자본주의 자유경제가 성장한다. 파괴적 혁신이 특정분야 '레드오션'을 두고 도토리 키를 다투는 전략에 멈춰선 안되는 이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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