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59〉놀이와 거짓말, AI 탐지기의 새로운 가능성
최근 미국의 월간 종합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의 한 기자가 인공지능(AI) 기반 거짓말 탐지기인 '코요테(Coyote)'를 이용해 자신의 어머니의 '사랑한다'는 대답이 진심인지 테스트한 사례가 화제가 되었다. 제작자들에 따르면, 이 도구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거나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 확인된 대본을 학습한 머신러닝 모델로, 텍스트 분석의 정확도가 80%에 달한다고 한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 실험에서 AI 도구는 어머니의 '사랑한다'는 진술을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거짓말 탐지기는 오랫동안 인간의 진실을 탐지하려는 시도로 사용되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기술인 폴리그래프(Polygraph)는 20세기 초 개발돼, 심박수, 혈압, 호흡 속도, 땀 분비 등의 신체 반응 변화를 감지해 거짓말을 판단하려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들은 불안감을 감지할 뿐이며, 숙련된 피심문자는 이를 속일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998년 미국 대법원은 연방 법원에서 폴리그래프 결과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으나 FBI와 CIA는 여전히 이 장치를 사용해 불안한 피심문자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용도로 사용 중이다. 이후 언어 기반 탐지를 전제로 한 AI 기반 거짓말 탐지기가 등장했다. 코요테는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텍스트와 음성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 상태나 언어적 패턴을 감지하려 한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이 알아채기 힘든 미세한 패턴도 포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기술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 실제로 코요테가 내놓는 결과는 '진실일 가능성 있음'과 '거짓일 가능성 있음' 사이에서 애매하게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쯤, 얼마나 높은 정확도의 거짓말 탐지기가 등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기술적 접근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거짓말의 복잡성, 즉 그 맥락, 동기,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 확인된다. 거짓말은 단순히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로만 볼 수 없다. 거짓말은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일부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개인이 사회적 압박을 피하거나 갈등을 완화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때로는 문화적 규범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 거짓말이 용인되거나, 심지어 기대되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어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인간 문화를 놀이의 관점에서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인간이 놀이를 통해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왔다고 주장하며, 놀이가 사회적 규칙과 질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거짓말 역시 이같은 사회적 놀이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거짓말은 규칙을 어기거나, 새로운 규칙을 만들려는 시도로써, 상징적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관련해 하위징어의 관점을 프레임워크로 적용해 다음의 기준들을 AI의 머신 러닝에 추가하면 거짓말 탐지기를 통한 심문 시 보다 명확한 맥락과 의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첫째, 놀이 규칙을 고려한 분석. 하위징어는 놀이가 규칙에 의해 정의된다고 보았다.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AI는 피심문자가 속한 사회적 그룹이나 문화적 배경에서 어떤 규칙이 중요한지를 학습하고, 왜 특정 규칙을 어기기 위해 거짓말을 선택했는지, 아니면 그 규칙을 강화하려 했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둘째, 거짓말의 놀이적 맥락 분석. AI는 대화 내에서 거짓말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특정한 놀이적 맥락에서 갈등을 해소하는데 사용된 것인지 분석할 수 있다. 셋째,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거짓말. 사회적 실천이나 의식은 특정한 사회 내 규칙과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는 거짓말에도 적용된다. AI는 결혼식, 장례식, 또는 종교적 의식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실천에서 피심문자가 전통적인 규범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는지, 또는 그 규범을 어기기 위해 거짓말을 선택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넷째, 상징적 행위로서의 거짓말. 거짓말은 때로 단순한 사실의 왜곡이 아닌,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피심문자의 말에서 나타나는 메타포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거짓말이 특정한 사회적 메시지나 이념을 표현하려 했는지를 분석해 볼 수 있다.
하위징어의 '문화는 놀이다'라는 개념은 거짓말이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독특하고 의미 있게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말과 신체 반응으로 확인하려 하는 기존의 거짓말 탐지 기술의 한계는 거짓말의 사회, 문화적 역할을 고려하면 미리 예상 가능한 한계라 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거짓말을 탐지하는 것 이상으로, 그 복잡한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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