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 아홉은 비싸서 특허 소송 포기…기업 경쟁력 무너진다”
“대형로펌만 가능해 1심만 1억원…기업들은 포기
변호사·변리사 공동 대리로 소송 비용 낮춰야”
김두규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지난 2월 제43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변리사회 설립 78년 만에 처음 나온 기업 사내 변리사 출신이다. 지금까지 변리사회 회장은 개인 사무소나 특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률사무소 출신이 맡아왔다. 어쩌다 기업 사내 변리사가 회장 선거에 뛰어들고, 젊은 변리사들의 지지를 받았을까.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의 대한변리사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를 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 법률이 기업의 특허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며 “기업들도 이런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인 HP프린팅코리아의 IP법무이사를 맡고 있는 김 회장은 변리사와 변호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권 확보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재 특허침해소송은 변호사만 대리할 수 있다. 변리사는 특허를 전문적으로 다루지만, 특허침해소송을 변호사와 공동으로 대리할 수도 없다.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에 한해 법률소비자가 원하는 경우 변리사를 공동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년간 다섯 차례나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가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이번 22대 국회에도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김 회장은 변호사만 특허침해소송을 대리할 수 있다 보니 특허침해소송 시장이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허침해소송은 전문성이 필요해 변리사팀이 내부에 있는 대형로펌만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며 “그렇다 보니 다른 나라들에 비해 소송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국내 특허침해소송이 1심을 진행하는 데만 보통 1억원 정도가 든다며 외국에 비해 2~3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소송 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문제다. 특허나 지적재산권 분쟁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변호사만 소송을 대리하면서 판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 하고,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변리사가 소송을 대리하면 2, 3번이면 끝날 변론기일이 10번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며 “고객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높은 비용에 소송도 더디게 진행되다 보니 특허침해 분쟁이 생겨도 소송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적다. 김 회장은 “내부적으로 파악해보면 1년에 특허침해분쟁이 1000건 정도 발생하는데, 실제 소송은 100건에 불과하다”며 “열에 아홉은 분쟁이 있지만 소송은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써 확보한 특허가 침해당하는 데도 소송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기업들은 처음부터 제대로 된 특허를 확보할 생각을 안 한다. 내부에 전문 변리사가 많은 대기업이야 문제 없지만, 중소·중견기업이나 벤처기업은 특허를 만들 때부터 적은 비용으로 적당히 만들려고 한다. 변리사의 특허출원 비용이 미국은 평균 2000만원, 일본은 500만원 수준인데 한국은 150만원에 그치는 이유다. 김 회장은 “어설픈 특허를 가지고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 특허침해소송의 공동 대리 문제가 우리 기업의 경쟁력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특허침해소송을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 대리하면 대형 로펌에 집중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비용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송이 더 많이 발생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들도 자신의 특허에 더 신경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젊은 변리사와 변호사가 팀을 이뤄 특허침해소송에 나서는 그림도 생길 것”이라면서 “소송 비용을 1억원에서 2000만원까지만 낮춰도 더 많은 기업이 자신의 특허 침해에 소송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여성벤처협회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지난 5월 입장문을 발표하고 특허침해소송에서 변호사와 변리사의 공동 소송 대리를 허용하는 변리사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당시 협의회는 입장문에서 “참신한 기술,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한 혁신·벤처기업들은 특허를 무기로 글로벌 무대에서 무한 경쟁을 해야 하고, 특허가 무너지면 혁신·벤처기업도 무너진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변호사만으로는 특허 분쟁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기업의 재산권을 지켜주는 게 특허의 역할인데, 지금 대한민국 특허는 울타리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허가 무용지물이 되면 모두가 자기 땅을 일구기 보다는 남의 땅에 열린 열매만 따먹으려고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기 전에 한국 기업을 지켜주는 특허 제도를 다시 살릴 수 있도록 특허침해소송 공동 대리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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