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 “다쳐도 병원 안 보내…법 몰라 성추행 버티기도”
고용허가제(비전문취업, E-9)를 대폭 확대하기 전에, 국내 체류 이주 노동자에 대한 폭언·폭행·성차별 등 노동 착취 실태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어제(18일) 오후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고용허가제 20년, 무권리 강제노동, 차별과 착취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를 열었습니다.
이주노조 측은 경기도 포천시 소재 목재 칩 및 톱밥제조 업체에서 근무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임시 가건물에 살게 하면서, 관리감독을 피하기 위해 계약서에는 미제공으로 표시하는 사업주들이 많은데, 임시가건물 숙소에 대한 진정 이후 사업주의 괴롭힘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이주노조는 사업주가 출근을 해도 일을 시키지 않고, 손가락 부상을 입어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며 "노동자가 사업장변경을 위해 사업주의 불법이나 부당한 처우를 고용센터에 진정하면 그때부터 갖은 방식으로 괴롭힌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속노조대구지부 성서공단지회(이하 지회)는 대구의 식품회사에서 1년간 70대 사장의 성추행을 참고 견디다 노조의 도움으로 사업장을 변경한 이주 여성 노동자 두 명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지회 측은 두 이주 여성 노동자가 성추행 피해 이후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지만, 사업주가 "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으면 너희 나라로 가든지, 아니면 불법을 만들 거야"라고 답해 1년을 버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추행 사실을 신고하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는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그리고 고용허가제 노동자에게 법 위반에 대한 '긴급 전화 서비스' 같은 것이 있었다면, 길고 긴 고통스러운 날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고용허가제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의 비전문 일자리에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하는 제도로, 2004년 8월 처음 시행됐습니다.
고용허가제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최초 3년간 3회, 추가 1년 10개월간 2회에 한해 허용이 되고 있습니다.
■ 계절근로제·선원취업(E-10) 모두 사각지대…"이주 노동자 희생 정책 끝내야"
증언대회에서는 고용허가제 외의 체류 자격을 통해 고용된 이주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도 소개됐습니다.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는 한국 지자체가 외국 지자체와 MOU를 체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농·어번기 등에 한해서만 최대 8개월간 외국인 고용을 허락하는 '외국인 계절근로제도'의 브로커 개입 문제를 지적하며 강원도 영월군과 전라남도 완도군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이들은 "한국정부는 브로커 개입과 중간착취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이를 막겠다고 말만 하지만 근본적 대책은 없다"며 "브로커 중간 착취에 대해 노동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그 노동자를 강제귀국 시켜버리는 방식으로 입막음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선원법을 적용받는 외국인 선원제, 즉 선원취업(E-10) 비자를 통해 고용돼 경상남도 남해에서 1년여간 오징어잡이 배에서 일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I 씨 등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센터에 따르면, I 씨는 월급이 나오지 않자 선박을 바꿔 달라고 관리 회사에 요청했으나 폭행을 당한 후 이탈했고, 이후 여권을 돌려받지 못해 현재 진정을 진행 중입니다.
센터 측은 "선원상담(E-10)의 경우 90% 정도가 신분증, 통장, 등록증을 압류당하고 내방한다"며 "이중 진정 등으로 신분증을 돌려받는 경우는 5% 미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실장은 "현 정부는 업종, 쿼터, 비자 등을 가리지 않고 여러 영역에서 산업현장이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를 대폭 늘리고 있으나, 그에 걸맞게 나아져야 할 이주노동자 권리, 지원정책 등은 개선은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저 혹은 최저 이하 수준의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위험 노동을 이주노동자들이 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 희생 정책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근본대책 마련 ▲임시가건물 전면 금지 ▲이주노동 제도 관할 고용부로 일원화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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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다예 기자 (all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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