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뇌세포 바꿔 노화 막는다” 美정부, 연구에 1400억원 지원
손상 제거하고 정상 뇌 조직으로 대체
줄기세포로 키운 뇌조직으로 생쥐서 성공
종간(種間) 뇌 이식 실험에서 가능성 확인
오래된 자동차라도 부품만 제때 바꿔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이제 뇌도 자동차 부품 바꾸듯 손상된 곳을 생생한 세포로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신장을 이식받고 인공 관절을 넣어 몸의 건강수명을 늘렸다면, 뇌까지 노화를 역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유전학자인 장 에베르(Jean Hébert) 교수는 지난주 미국의 ARPA-H(보건의료고등연구계획국)의 ‘뇌 조직 대체’ 연구를 이끌 프로그램 매니저(PM)로 선정됐다. 에베르 교수는 치매로 손상되거나 늙은 뇌세포를 인간 배아 조직으로 대체하는 수술법을 개발하는 데 1억 1000만달러(한화 1470억원)를 지원받을 예정이다.
◇배아줄기세포로 손상된 뇌 대체해 노화 억제
에베르 교수는 2020년 저서 ‘노화 대체’에서 자동차의 점화 플러그 같은 부품을 계속 교체해 연비를 유지하듯 사람들이 영원히 살려면 신체 각 부위를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신장 이식이나 인공 관절 수술이 그런 생각을 현실화했다. 하지만 뇌는 차원이 다르다. 뇌가 손상됐다고 바꾸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에베르 교수는 기억과 자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뇌 조직을 교체하려면 천천히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식한 세포가 주변 세포와 동화된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에베르 교수는 동물실험에서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는 지난해 뇌가 손상된 생쥐에게 생쥐의 배아줄기세포를 주입했다.
먼저 쥐 배아(수정란)에서 모든 조직과 세포로 자랄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해 영양분을 주며 배양했다. 줄기세포는 수술할 부위에 맞는 틀에서 키웠다. 쥐의 뇌에서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고 그에 꼭 맞는 형태의 줄기세포 조직을 이식하자 2주 뒤 혈관이 생기고 신경세포가 나와 다른 곳까지 연결됐다. 이식한 뇌 부위에서 정상적으로 전기신호가 발생했으며 시각 자극에도 반응했다.
에베르 교수는 ARPA-H의 지원을 받아 영장류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뇌의 바깥에 있는 신피질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곳은 감각과 추론, 기억 대부분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에베르 교수는 신피질을 교체할 수 있다는 근거를 두 사례로 제시했다. 한 남성의 뇌에 오렌지 크기만 한 종양이 자랐다. 종양이 워낙 천천히 자라다 보니 뇌가 적응했다. 그곳에 있는 기억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 결과 종양을 제거해도 행동과 말투에 변화가 없었다.
또 뇌전증 환자의 뇌에 태아 뇌세포를 이식하자 뇌에 완전히 통합되면서 발작 증상이 사라졌다. 에베르 교수는 두 가지 사례를 근거로 아직 발달 중인 뇌세포를 이식하면 자라면서 성인의 뇌에 쉽게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식을 한 번에 하지 않고 조금씩 한다면 뇌가 조직 제거와 새 조직 이식에 적응할 수 있다고 봤다.
◇오가노이드로 인간과 쥐의 뇌 통합도 성공
에베르 교수의 아이디어는 이미 여러 실험에서 부분적으로 가능성이 확인됐다. 세르지우 파스카(Sergiu Pasca)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은 2022년 ‘네이처’에 “배양 용기에서 키운 인간 뇌 오가노이드(organoid)를 어린 쥐에게 이식해 신경세포들이 통합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臟器)라고 불린다. 이전에는 인체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내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신경줄기세포를 입체로 배양해 콩알만 한 크기의 뇌 오가노이드를 키웠다. 미니 뇌는 생후 3~7일 된 어린 쥐에게 이식했다. 미니 뇌가 이식된 곳은 감각 신호를 처리하는 체성 감각 대뇌 피질이었다.
쥐가 자라면서 미니 뇌도 커졌다. 6개월쯤 지나자 미니 뇌는 처음보다 6배로 커졌으며, 쥐 뇌의 한쪽 반구에서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연구진은 쥐에게 물을 주며 빛을 비추는 실험을 했다. 쥐는 나중에 물을 주지 않고 빛만 비춰도 혀를 핥았다. 조건반사 반응을 보인 것이다.
쥐의 뇌에 이식한 인간 미니 뇌는 빛에 반응하는 로돕신 단백질을 만들도록 했다. 쥐의 뇌에서 인간 미니 뇌 부분에 빛을 비추자 물을 주지 않았음에도 역시 혀를 핥는 행동이 나타났다. 미니 뇌가 처리한 빛 신호에 따라 쥐의 뇌가 행동을 지시한 것이다. 인간과 쥐의 뇌가 통합된 것이다.
크리스틴 볼드윈(Kristin Baldwin)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셀’에 “시궁쥐의 줄기세포를 생쥐 뇌에 이식하자 두 동물의 신경세포가 융합하면서 잃어버렸던 후각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한 동물이 종이 다른 동물의 감각세포를 통해 세상을 감지하고 반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생쥐의 배아에서 유전자를 변형시켜 후각세포가 자라지 못하게 했다. 그다음 생쥐 배아에 시궁쥐 줄기세포를 주입했다. 연구진은 나중에 생쥐가 다 자란 뒤 신경세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조사했다. 그러자 시궁쥐 신경세포 덕분에 생쥐가 후각을 회복했다. 신경세포를 이식해 뇌 질환을 치료할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인터넷, 자율차 낳은 R&D 방식, 의료에도 도입
에베르 교수가 언젠가 인간에게 뇌를 대체하는 실험을 하겠다고 말하면 주변에서는 섣부르다고 말렸다. 정부는 달랐다. 에베르 교수가 뇌를 대체하는 아이디어를 동물에서 증명하려면 1억 1000만달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ARPA-H 관계자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ARPA-H가 원래 위험이 큰 연구를 지원하려고 설립됐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보건복지부 산하에 ARPA-H를 만들었다. 연간 예산이 15억달러(2조원)다.
ARPA-H는 미국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벤치마킹한 조직이다. DARPA는 가능성이 적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성과가 예상되는 도전적인 연구개발(R&D) 사업을 지원해 인터넷과 위성항법장치(GPS), 자율주행차, 드론, 스텔스 등 오늘날 세상을 좌우하는 기술들을 낳았다.
ARPA-H는 DARPA와 같은 방법으로 감염병 대유행과 초고령화, 난치 질환 등 국가 보건 난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중 하나가 에베르 교수의 연구이다. DARPA 성공 사례처럼 에베르 교수의 아이디어가 성공하면 치매에 걸린 환자가 뇌 교체 수술을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Cell(2024),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4.03.042
Bioengineering (2023), DOI: https://doi.org/10.3390/bioengineering10020263
Nature(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5277-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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