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노석준의 메타버스 세상...눈속임으로 연 가상 세계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도 가상 세계로 '로그인'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대신 그림 속 가상 세계로 몰입하고 인도해 줄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미켈란젤로처럼 성당이라는 물리적 공간 자체의 크기와 구조 등을 활용하기도 하고, 회화 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회화에서 그림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원근법과 명암법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거리감과 입체감을 극대화함으로써 1차원의 편평한 면은 공간적인 깊이가 더 해져 마치 2차원의 입체적 공간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관람자가 느끼는 상상력과 몰입감이 더해지면, 3차원의 공간감까지 생겨나 마침내 가상 세계로 로그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림 속에 숨겨진 가상 세계의 입구
로마의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당(Chiesa di Sant'Ignazio di Loyola a Campo Marzio)에 그려진 천장화 '성 이냐시오의 승리'는 착시 현상을 통해 관람자의 몰입을 이끄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탈리아 화가인 안드레아 포조(Andrea Pozzo)가 그린 '성 이냐시오의 승리'는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여러 천장화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탄생했다.
예수회의 설립자 로욜라 이그나시오(St. Ignatius)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당은 1626년에 짓기 시작해 1650년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다. 이 성당은 여느 유럽의 성당과 다른 독특한 점이 있다.
천장이 둥근 돔의 형태인 다른 성당과 달리 이 성당의 천장은 편평한 모양이다. 그런데 관람자 대부분은 이 성당의 천장도 둥근 돔의 형태인 줄 안다.
천장화를 맡았던 안드레아 포조가 편평한 사각형의 천장에 원형의 돔을 그려 넣어 마치 진짜 돔의 구조인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포조는 천장 내부에 여러 가지 가짜 돔을 그려 넣고, 다시 그 안에 실제 성당의 기둥과 동일한 디자인의 가짜 기둥을 그려 넣었다. 이때 원근법을 활용해 기둥이 점점 하늘로 향하는 착시 효과를 줬다. 덕분에 성당은 실제보다 훨씬 더 높고 웅장해 보인다. 게다가 성당의 바닥에서부터 천장의 그림까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벽과 기둥의 구조로 성당은 본래의 물리적 크기와 구조의 한계까지 극복할 수 있게 됐다.
돔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안에 그려진 천장화다. 포조는 자신만의 탁월한 상상력과 원근법을 활용해 화려하고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그림의 중심부로 갈수록 흰색을 많이 활용해 몽환적인 천상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성당 전면에 있는 제단 상부의 천장에는 가장 중심에 말을 타고 전투를 지휘하는 용맹한 이냐시오를 그려 넣어 관람자에게 천장화의 주제와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포조는 단순한 원근법의 활용만이 아니라 관람자의 시선에서 그림을 그렸다. 다시 말해, 성당의 중앙 통로에 서서 관람자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그림 속에 등장한 인물의 대부분이 실제로 아래에서 위로 쳐다볼 때 보이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천장화를 보는 관람자가 높은 천장으로 치솟아 마침내 가상 세계의 입구를 열고 천상에 닿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연출과 기획을 통해 관람자는 포조가 그린 천장화의 일부가 되어 천국의 축복을 받는 참여자가 된다.
단순 관람자가 아니라 간접적인 참여자로 가상공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거대한 건축 공간의 천장화가 눈속임을 통해 가상공간으로 유도하는 장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메타버스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버추얼 리얼리티와 거의 비슷한 시도를 보여준다. 고글 대신 거대한 건축 공간과 그 안의 그림이 가상 공간으로 로그인시켜주는 유도적 매개 장치 역할을 한다.
이러한 매개 장치로 관람자는 작가가 구현한 가상 세계에 몰입하고 빠져들어서, 마치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아날로그 시대에 탄생한 원초적 가상현실, 즉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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