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장사 잘한 대형 손보사, '실적 부풀리기' 논란에 '씁쓸'
손보 '빅5' 상반기 순익 5조원 육박
금융당국 회계기준 변경 압박 등 하반기 환경 녹록지 않아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호실적 배경에 '실적 부풀리기'가 있다고 보고 있다. 손보사들은 하반기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 등의 계절적 요인과 금융당국 회계기준 변경 압박 등이 더해지며 마냥 웃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상위 5개 손보사(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의 상반기 합산 당기순이익(별도 기준)은 4조8211억원으로 작년 동기(3조9540억원) 대비 22%(8671억원) 늘었다.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는 1조원 안팎의 순익을 냈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대비 8% 늘어난 1조2772억원, DB손해보험은 23% 늘어난 1조1241억원, 메리츠화재도 22% 증가한 9977억원을 기록했다.
현대해상과 KB손해보험 역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현대해상은 당기순이익(8330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67.6% 증가해 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KB손해보험도 57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9% 증가했다. 이는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업계에선 손보사들이 지난해 도입된 새 회계제도(IFRS17)에 유리한 보험 판매에 집중해 회계상 이익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 보장성 보험은 새 회계제도(IFRS17)상 핵심 수익성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을 확보하기에 유리한 상품이다. 실제 5대 손보사의 합산 CSM 잔액은 지난해 말 53조5209억원에서 올해 6월 말 55조8944억원으로 증가세다.
보험사들이 회계제도 변경 이후 실적을 부풀렸다는 의혹도 여전하다. 지난해 IFRS17이 도입된 이후로 보험사들이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IFRS17은 보험사의 수익을 보험료가 들어온 시점이 아닌 계약기간에 걸쳐 나눠 인식하도록 한다. 기본 원칙만 제시하고 보험사에게 자율성을 보장한다.
특히 무·저해지 상품은 이익 증가의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무·저해지 상품은 납입기간 내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대신 보험료가 일반 상품에 비해 저렴하다. 다만 해지율 설정에 따라 이익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보험업계에선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손보사 관계자는 "절대적 숫자가 증가한 것은 회계제도 변화 때문"이라며 "보험사에서 실적을 부풀린다고 해도 각 보험사의 실질 가치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손보사 관계자는 "손보사 호실적 배경은 CSM 증가에 도움이 되는 장기인 보장성 보험 판매에 수년 전부터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 역시 지난 6월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보험회사의 재무제표는 독립된 감사인의 엄격한 확인을 거쳐 공개되는 정보로서 인위적인 조작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이들 협회는 "보험회사는 외부 전문가 등과 충분히 협의해 IFRS17 회계 기준서에 입각한 결산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구축했고 최선 추정을 통해 CSM을 산출하고 있다"며 "예실차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다수의 보험사가 적정 수준의 범위 내에서 예실차를 유지 중"이라고 했다.
하반기에는 금융당국이 회계제도 개선안 마련에 나서는 만큼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사그라들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융당국은 'IFRS17 공동협의체'를 꾸리고 회계 실무상 혼란을 막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당초 올해 2분기 결산이 이뤄지기 전인 8월까지 제도개선 방향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개선안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달 보험개혁회의에서 "연말까지 매월 회의를 개최해 판매채널, 회계제도, 상품구조 등의 종합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최근 국민의 관심이 높은 실손보험과 IFRS17 쟁점 사항의 경우 가급적 연말 전에 빠르게 개선방안을 도출·확정하겠다"고 말했다.
당국은 금리연동형 상품의 공시이율 예실차 관련 제도 변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보험사는 공시이율 관련 예실차를 손익에 반영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 이를 기타포괄손익(OCI)에 반영한다는 내용이다. 공시이율 예실차란 금감원의 미래공시이율(예정이율)과 실제 공시이율 간 차이를 뜻한다. 예실차가 OCI로 반영되면 그만큼 보험사의 손익은 줄어들게 된다. 지난해 실적까지 소급적용되면 중소형 보험사의 경우 많게는 1000억원 넘는 이익을 토해내야 한다는 관측도 있다.
하반기 기준금리가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호실적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다. 금리하락이 본격화될 경우 보험사들의 자산 수익성이 악화해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고금리로 팔았던 상품에서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손보사 관계자는 "단기납종신보험 등 새 회계제도에서 유리하다고 하는 상품을 많이 판매한 회사들도 있으나 최근에는 자중하는 분위기"라며 "하반기는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 등의 계절적 요인과 금융당국 회계기준 변경 압박 등의 이유로 상반기처럼 (실적이) 양호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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