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후 속 쓰리다고, 모기 물려 간지럽다고 응급실 오네요"

유영규 기자 2024. 8. 1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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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 자료 화면

의정 갈등으로 응급실을 떠나는 의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 여름철 재유행에 온열질환까지 겹치면서 응급실이 '응급 상황'에 놓였습니다.

의정 갈등 상황과 여름철 질병까지 겹치며 과부하가 걸린 것인데, 음주 후 속이 쓰려서, 손톱이 살짝 들려서 응급실을 찾는 경증환자까지 많은 실정입니다.

정부는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시 본인부담금 인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현장에서는 이를 반기면서도 지금까지 정부가 상황을 방치했던 만큼 정책 의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오늘(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정 갈등 이후 지방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이달부터 응급실 진료를 축소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응급실 진료를 중단하거나 축소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6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4명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 총 10명이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는데,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각기 휴직과 병가를 내면서 당직근무 체제를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됐습니다.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재로 이비인후과 응급 진료가 불가능합니다.

성형외과와 산과, 피부과, 안과 등에서도 진료가 제한됐습니다.

영남대병원 응급실도 의료진 부재로 치과, 외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등 여러 과에서 진료가 제한됐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현재 전체 응급실 408곳 가운데 병상을 축소한 곳은 25곳입니다.

이런 와중에 경증환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응급실 평균 내원환자는 1만9천 명을 넘어 의정 갈등 이전 평상시의 108%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 경증환자는 평상시의 101% 수준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가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응급실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병력이 없는 신체가 건강한 성인들마저 특별한 외상이 없는 상태에서 응급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한응급의학회 관계자는 "고령이 아닌 20∼40대 중 평상시 특별한 질환이 없던 건강한 성인 중에서도 응급실에 오시는 분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물론 두통 때문에 응급실에 왔다가 검사 후 지주막화 출혈인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밤새 술 마셔서 속이 쓰리다며 오시는 분, 모기에 물려 피부가 붓고 간지럽다고 오시는 분들도 정말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경증환자 증가에는 최근 코로나19 재유행과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입원환자는 6월 말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셋째 주만 해도 226명이던 입원환자가 이달 2주차에는 1천357명(잠정)까지 늘어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문에 부산 남구의 한 2차 병원 응급실은 휴일이던 18일 한꺼번에 몰려든 감기환자 등으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콧물 기침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들과 인후통, 몸살 등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이 뒤섞여 평일 외래진료 때보다 대기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코로나 의심증세를 보였지만, 코로나 검사를 생략한 채 링거를 맞거나 해열제 등으로 대증치료만 받고 돌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전국에 기록적인 열대야가 이어지는 등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온열질환자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질병청이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를 가동한 5월 20일부터 이달 17일까지 누적 환자는 2천741명(추정 사망자 24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3% 많습니다.

응급의학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온열질환과 경증환자 증가에는 분명한 관계가 있다"며 "온열질환자는 당연히 늘었고, 이 여름에 열이 높아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도 많아서 현장에서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정부는 경증환자의 응급실 내원 증가 문제를 관리하고자 응급실에 걸린 부하를 줄이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최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응급의료체계 유지 대책을 논의하고, 인건비와 당직 수당을 계속 지원해 응급실 인력을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전문의가 부족한 권역·지역응급센터에는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을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나아가 경증환자가 권역응급센터 등 응급실을 찾을 경우 의료비 본인 부담을 단계적으로 인상합니다.

높은 의료 접근성과 낮은 의료비 부담 덕분에 환자들이 비교적 쉽게 응급실을 내원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런 정부 방침을 환영하면서도 정책 실현 의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응급의학회 관계자는 "응급실 진료비가 워낙 싸다 보니까 다음 날 외래 진료를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증상으로도 응급실에 오는 분들이 많다"며 "경증환자의 경우 응급의료 비용을 지금의 2∼3배로 올리거나, 아예 100% 부담하게 하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본인부담금 인상을 얘기하면 정부 관계자들은 법률도 고쳐야 하고 국민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눈치 볼 거면 의대 입학정원 2천 명은 어떻게 늘린 것이냐"며 "정부의 정책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고, 안타깝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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