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녀·연하남 원조교제로 시선 끌지만…진짜 메시지는 [인터뷰]
202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
복잡한 세상 단순하게 전할 생각 없어
범죄자 동정론, 모국어 소외, 원조교제 등 다뤄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발칙하다. 범죄자를 보며 비범죄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나는 특권계층’이라는 부채의식이어야 하다니. 음침한 교도소 대신 도쿄 한복판의 특급호텔 같은 타워 꼭대기에서 범죄자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친엄마와 동갑인 연상의 여성과 사귀는 곤궁한, 그러나 인물이 해사한 20대 남성이 이야기의 한 주축을 맡는다. 음지 속 ‘마마활동’이 주요 서사로 전면에 나선다.
제17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도쿄도 동정탑’의 작가 구단 리에(34)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부유한 남성이 젊은 여성의 시간을 돈으로 산다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며 인물간 관계 설정에서 의도한 바를 밝혔다.
이야기의 주인공 마키나 사라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40대 여성인데, 그의 어린 연인인 도조 다쿠토는 오모테산도 명품관에서 일하는 점원이다. 어느날 오모테산도 길을 걷던 사라가 다쿠토의 외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매장에 들어가 값비싼 구두를 매상 올려주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보통의 원조교제에서 성별을 바꾸면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습니다. 같은 행위라도 남성이 하는 경우와 여성이 하는 경우, 그 행위가 받아들여지는 방식과 인상에 큰 차이가 있거든요. 만약 이 소설의 남녀를 반대로 썼다면 지금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다쿠토가 작중 ‘건축가 여인’이라고 다정히 부르는 사라는 도쿄의 특급호텔에 머물면서 멀지 않은 곳에 건설될 ‘호모 미세라빌리스’를 위한 ‘심파시(sympahty) 타워’ 설계를 구상하는 중이다.
작가는 작품 속 대사 일부를 실제 문장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chat)GPT’가 내놓은 답을 대사의 일부로 녹여냈다. 주인공 사라와 소설 속 AI챗봇인 ‘에이아이-빌트(AI-built)’의 대화다.
AI-빌트가 설명하는 ‘호모 미세라빌리스’가 흥미롭다. AI-빌트는 이에 대해 “기존에 ‘범죄자’라고 불리며 차별받았던 경험이 내재된 사람, 교정시설에서 복역중인 수감자, 비행청소년을 가리켜 그 출신이나 환경에 대해 ‘가엾다’, ‘측은하다’, ‘불쌍하다’ 같은 동정적인 시점을 보이며 그들을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로 정의한다”며 “비범죄자는 ‘행복한 사람들’,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호모 펠릭스’이며, 이들은 스스로의 특권을 자각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한다.
즉, 심파시 타워가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는 비참한 환경 때문에 범죄자가 된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배려해주자는 ‘참신한(?)’ 개념에 기반한다.
여기에 작가가 끌고 들어온 ‘모국어 소외’ 화두까지 겹쳐지며 작품은 다소 혼란스럽게 전개된다. 사라는 영어로 된 ‘심파시 타워’ 명칭이 못내 마음에 안 든다. 계속해서 단어를 합치고 쪼개면서 일본어로 된 새로운 명칭을 고민한다. 다쿠토와 침대에서 필로 토크(Pillow talk) 도중, 다쿠토가 너무도 쉽게 내놓은 ‘도쿄도 동정탑’을 듣고는 경탄한다. 그리고 끝내 이 새 명칭으로 관철시킨다.
작가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자국어 대신 영어를 선호하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자기 나라보다 다른 나라의 문화가 더 낫다는 감각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예리한, 단 하나의 메시지는 뭘까. 범죄자 동정론인지, 모국어 소외현상인지 두루뭉술하다. 이에 대해 구단 리에는 처음부터 단순한 메시지를 전할 의도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복잡한 현실을 복잡한 그대로 이야기로 만들어 표현하는 것이 소설가로서의 제 목표입니다. 줄거리가 단순하지 않아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미 혼란한 세상을 보다 정확하게 그려내고자 노력한 결과이기에 저에게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읽고 난 뒤 이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에 인내심 있게 맞서려는 독자들에게 제가 힘이 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작가가 ‘도쿄도 동정탑’으로 수상한 아쿠타가와상은 역사적으로 문학성과 예술성을 갖춘 신인 작가의 작품에 수여돼 왔지만 최근에는 사회 및 현실의 문제를 사실적이고도 독창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이 유독 주목받고 있다.
‘도쿄도 동정탑’은 다루고 있는 주제도 그렇지만, 가장 뜨거운 화두인 AI챗봇을 직접 사용한 면이 기발하다는 평가다. AI가 작가, 화가와 같은 창작자의 역할마저 대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지만, 구단 리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했다.
그는 “작가의 사명은 대부분의 독자가 ‘AI를 활용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제가 가진 자신감은 작품의 질을 높이려는 저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자신감이며, 작품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선택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신조를 밝혔다.
34살이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작가로서 꽃길만 걸어왔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처음 신인상에 응모하기 시작해서 수상하고 데뷔(2021년 126회 문학계신인상)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며 “그 시기에 저는 완전히 무명이었고 출구를 알 수 없는 터널 속에 있었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대학에서는 예술 전반에 대해, 특히 미술사와 영화사 등을 공부했어요. 원래는 연구직에 종사하려는 생각도 했고요. ‘작가’를 직업으로 삼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라 고려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째선지 주변 사람들은 제가 작가가 될 거라고 믿더라고요. 저는 아직 제 인생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인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주변 사람들이 저를 더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도쿄도 동정탑/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문학동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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