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는 야구 심판 오심률 5.5% 증가
혹서기에 아이들을 납치해 비밀리에 가르치는 ‘어린이 야구 학교’가 있다고 합니다. 한여름 가장 더울 때인 오후 2시부터, 비오는 날에는 히터를 틀고 실내체육관에서 연습한다고 합니다. 감독님은 다 뜻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한다는데, 이거 아동학대 아닌가요? -제보자 '베이스볼 대디'(☞30회에서 이어짐)
미국 뉴욕도 35도가 넘는 찜통이었어요. 그렇다고 뉴욕까지 왔는데 전통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야구 한 번 안 보고 가면 서운하죠.
숙적의 라이벌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 초반부터 팽팽하게 진행된 경기의 균형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죠. 드디어 9회말 5 대 5 동점. 레드삭스는 양키스를 상대로 2사 만루에서 수비를 벌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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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볼!”… “볼!”…
분명히 한가운데로 공이 들어갔는데, 심판은 계속 볼만 선언했어요. 사람들이 웅성거렸어요. 결국 뉴욕 양키스는 밀어내기 볼넷으로 추가점을 뽑아 승리했지요. 그러잖아도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가 임계점에 있던 레드삭스 팬들은 폭발해 소리를 질렀지요. 3루 쪽 관중석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30여 명의 사람들이 플라스틱병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우~우~우~”
“심판 물러나라!”
그런데, 조금 이상했어요. 경기가 끝났는데도 심판이 주저앉아 땀나는 얼굴을 닦고 있었죠.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죠. 홈스와 왓슨은 경기장으로 내려가 심판을 만났어요.
“폭염 날씨에 이렇게 두꺼운 심판 복장을 하고 있으면 정신 못 차립니다. 게다가 땀이 계속 눈으로 흘러서 제대로 공을 보질 못했어요. 날이 더우면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불가능해요!”
심판은 3루 쪽 관중석에서 플라스틱병을 던지던 빨간 응원부대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저 사람들은 야구장의 극렬 분자들입니다. 선수와 심판이 더위 때문에 조금만 못해도 야유를 퍼붓고 오물을 던집니다.”
더우면 증가하는 오심
투수와 마찬가지로 심판도 폭염 경기를 두려워해요.
미국 몬머스대 연구팀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만8907개의 메이저리그 경기의 판정 정확도를 분석한 적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주심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의 오심률이 13.3%인데요, 섭씨 21~27도의 쾌적한 온도에서 섭씨 35도 이상의 폭염 상황으로 바뀌면 오심률이 5.5%가 늘어난다는 거예요. 심판이 말했어요.
“다른 산업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훈련을 받은 심판들도 더울 때에는 집중하기 힘듭니다. 한국은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로봇 심판을 도입했다고 하던데… 하지만 야구하는 재미가 떨어질 거예요.”
“더우면 심판이 경기를 빨리 끝내기도 하나요? 이를테면, 스트라이크를 더 자주 선언한다던가, 아까처럼 볼을 선언해서 역전을 하게 만든다거나…”
“절대 아닙니다. 그건 판정에 의도가 개입하는 거니까요. 그 연구 결과에도 나왔을 거예요. 심판의 오심에서 경기 시간을 단축하려는 의도는 발견되지 않았고, 더운 날씨에 따른 경기력 저하 때문이라고 판단된다고요. 그리고 저는 무더위도, 무더위에 따른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전례없는 온실가스 증가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은 교란되고 있고, 한여름 폭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황당한 사건 세 가지를 들어볼까요?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 등에서는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어요. 지난 5월 한낮 기온이 45도까지 오른 직후 망토짖는원숭이(Mantled howler monkey) 146마리의 사체가 발견됐죠. 과학자들은 열사병에 걸려 추락했을 거라고 봐요. 더위 먹으면 우리 인간도 주의력을 잃거나 쓰러지잖아요.
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열파로 물렁물렁해진 아스팔트에 박혀 빠져나가지 못한 적도 있어요. 2012년 미국 워싱턴 디시의 로널드레이건공항에서 유에스에어웨이(US Airways) 50인승 경량 항공기에 실제 벌어진 일이죠. 며칠째 폭염이 이어지면서 이날 공항 온도는 36도를 웃돌았죠.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 주 인구 250명의 라이튼(Lytton)은 2021년 6월29일 49.6도까지 치솟았습니다. 위도 50도면 서늘한 곳이에요. 이튿날 산불이 났고 마을 전체를 태우며 두 명의 생명을 앗아갔어요.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보고서를 냅니다. 바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보고서인데요, 가장 최근에 나온 보고서가 2023년 6차 종합보고서예요. 거기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극적으로 낮추지 못해 현행 추세대로 이어지면(매우 높은 배출량 SSP5-8.5 시나리오), 산업화 이전(1850~1900년)과 비교해 이번 세기 중반(2041~2060년)에는 1.9~3.0도, 이번 세기 후반(2081~2100년)에는 3.3~5.7도 높아진다.”
불과 1.1도가 높아진 현재의 폭염도 참을 수 없는데, 20년 뒤 ‘2도의 시대’는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 살까요? 또, 50~60년 뒤에 시작하는 3.3~5.7도의 시대는 어떨까요? 게다가 육지는 해양보다 온난화 강도가 더 세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는 더 높은 온도를 경험해야 할 테죠.
사막에서 공을 던지는 아이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빨간 응원부대를 만나려고 3루 쪽 관중석에 갔지만, 그들은 이미 경기장을 떠나고 없었어요.
“반장님, 이것 보세요! 그들이 놓고 간 겁니다.”
왓슨이 든 안내장처럼 보이는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어요.
‘파이어볼러의 아이들’ 투구 훈련 장소 집결
8월15일 오후 2시, 미국 애리조나 사막 666번지
보안 엄수(아무에게도 알려주지 말 것)
“사막에서 야구 훈련을 한다고? 저번에 왔던 제보와 비슷한데…”
뒤에 따라왔던 심판이 말을 받았어요.
“소문이 사실이군요. 앞으로 다가올 극한기후에 통할 완벽한 야구를 하는 선수를 전 세계적으로 양성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2050년 세계 야구계를 제패한다나 뭐라나…”
한여름 애리조나 사막은 섭씨 40도가 훌쩍 넘었어요. 도저히 야구 경기장이 있을 거라고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서 열 살 남짓한 어린이들이 공을 던지고 있었죠.
“이건 아동학대라고!”
왓슨이 증거를 남기겠다며 사진을 찍었어요. 그때 아이들 훈련을 지도하던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이 뒤를 돌아보더니 다가왔어요.
“당신들, 누구요?”
“아, 저희는 베이비 루스 3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미래의 프로야구가 새롭게 정의되겠더군요.”
왓슨이 기지를 발휘하여 답했지요. 왠지 베이비 루스 3세와 관련이 있을 거 같았거든요.
“아! 베이비 루스 3세를 만나셨다고요? 우리는 바로 그분의 이론을 듣고 ‘파이어볼러의 아이들’을 창단했습니다. 앞으로 홈런이 많아지는 익스트림 라이브볼 시대에 투수의 역할은 참 귀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폭염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투수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힘들겠어요.”
홈스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구식 훈련법을 도입했습니다. 1970~80년대 고등학교 야구부에서는 더운 날에도 훈련 중 물 먹는 걸 금지했습니다. 그들이 강하게 자라 한국 야구의 전성기를 꽃피우지 않았습니까? 훌륭한 선수는 진흙밭에서 만들어집니다.”
감독이 뜨거운 침을 튀기며 말했습니다.
“2050년에 지구가 몇 도가 상승하시는지 아십니까? 홈런은 얼마나 또 많아지고요? 이 어린이들은 20년 뒤 ‘2도의 시대’ 열대의 야구장에서 주전과 베테랑 역할을 할 겁니다. 다른 선수들이 더위에 허덕일 때, 아이들은 그랙 매덕스, 로저 클레멘스 같은 최고의 투수가 되어 리그를 지배할 테죠.”
태양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었고, 감독은 혼자만의 장광설에 빠져 있었습니다. 흙 묻은 유니폼을 아이들이 그늘막으로 들어와 주전자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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