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혁의 야구세상] 43년만에 '수기 기록' 포기하고 피치클록 재는 기록원들(종합)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이달 초 KBO는 공식 기록원 모집공고를 냈는데 지난 13일 지원서 마감 결과 총 51명이 응모했다고 한다.
그냥 일반인이 아니라 전문기록원 양성 과정을 수료했거나 최소한 기록 강습회 수료증을 소지한 이들에게만 응모 자격을 줬다.
KBO는 서류전형과 실기 전형 및 1차 면접, 2차 면접을 거쳐 계약직 기록원 1명을 뽑을 예정이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세이프와 아웃, 스트라이크 볼 등을 판정하는 심판과 달리 기록원은 팬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KBO 기록원은 안타와 실책, 타점과 야수선택, 자책점과 실점, 폭투와 패스트볼 등은 물론 각종 세세한 기록을 공식적으로 판정하며 선수와 팀 기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야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기 있는 직종이다.
지난 1월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기록 강습회는 온라인 공고를 낸 지 33초 만에 200명 정원이 마감됐다고 한다.
기록원의 실제 근무 환경은 녹록지 않다.
현재 KBO 공식 기록원은 총 15명이다.
하루에 5경기씩 열리는 1군 경기에 2명씩, 2군 경기에는 1명씩 들어가는데 단 1명도 여유가 없다.
지난해까지는 16명이었다.
기록위원장은 평소 경기에 투입되지 않고 기록 전반을 관리했다.
하지만 전임 김태선 위원장이 지난 연말 정년 퇴임한 뒤 KBO가 추가 기록원을 뽑지 않아 15명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현재 이종훈 기록위원장은 거의 매일 경기에 투입돼 직접 기록 판정을 내리고 있다.
KBO 심판은 시즌 개막일 기준 52명으로 넉넉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기 인원이 있다.
그러나 인원 여유가 없는 기록원은 다치거나 경조사가 생기면 아주 큰 일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라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을 당시에는 은퇴한 기록원을 급히 불러 투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빡빡한 근무 일정 속에 KBO 공식 기록원들은 올 시즌 새로운 업무가 생기면서 지난 43년간 이어온 '수기(手記) 기록'을 포기했다.
KBO 1군 기록은 1990년대 후반부터 2명이 투입돼 한 명은 전통적인 '수기 기록', 다른 한명은 '전산 기록'을 담당했다.
그런데 올 시즌 KBO가 시범적으로 도입한 '피치 클록' 업무가 기록원에게 떨어졌다.
한 명은 전산 기록을 계속하지만, 다른 한 명은 '수기 기록'을 포기하고 대신 초시계를 잡게 된 것이다.
전산 기록은 아직 시스템 문제로 인해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면 경기 시간상으로 제때 입력할 수 없는 큰 단점이 있다.
공식 기록원이 전산 입력 때문에 다음 경기 상황을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기록원들은 이런 문제점뿐만 아니라 '수기 기록'의 역사성을 지키기 위해 KBO에 제고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KBO는 각 구장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수기 기록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공식 기록원이 전산 입력을 하느라 경기 상황을 놓치면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아르바이트생이 작성하는 수기 기록은 단순 참고 자료일 뿐이지 공식 기록이 될 수는 없다.
결국 1982년 KBO리그 출범 이후 이어져 온 '수기 기록'이 올 시즌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올 시즌 자동 투구판정시스템(ABS)과 피치 클록을 도입한 KBO는 공식 기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다.
KBO가 8년 만에 기록원 모집 공고를 낸 이유는 올 시즌을 끝으로 고참 기록원 한 명이 또 은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명이 충원되더라도 내년 KBO 기록원은 똑같이 15명이다.
프로야구의 모든 경기 상황을 하나하나 판정하고 역사에 남기는 공식 기록원은 웬만하면 아픈 것도 참아야 하고, 경조사는 동료 눈치를 봐야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 기록원 중 한 명이 처음 출산 휴가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록위원회는 어쩔 수 없는 결원이 생기자 다시 은퇴한 기록원에게 '대타 출전'을 부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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