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예비역 3성' 국방…'예비역 특유의 유연성' 먹힐까 [취재파일]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4. 8. 19. 11:03
▲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
김용현 경호처장의 국방장관 후보 지명은 말 그대로 전격적이었습니다. 흔한 하마평 한 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발표됐습니다. 귀 밝기로 유명한 군인들도 허를 찔렸다며 우왕좌왕했습니다.
김용현 경호처장은 윤석열 정부의 '국방 상왕'으로 불립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국방부와 군의 살림을 살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마침내 장막을 걷고 전면에 나설 참입니다.
가까이는 '입틀막' 경호, 멀리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까지 김용현 처장이 직접 관여한 대형 민감 이슈가 많습니다.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핵으로도 꼽힙니다. 야당은 맹공을 벼르고 있습니다.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벌써 소문난 잔치가 됐습니다. 속담처럼 먹을 것이 없을지, 야당 바람대로 정권 공격의 기회가 될지 관심이 뜨겁습니다. 김 처장과 관련된 공개 이슈 외에도 짚어볼 점들이 있습니다.
김 처장이 군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탄탄합니다. 국방부와 각 군, 그리고 주변 기관에 김 처장과 대거리할 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비역 3성인 김용현 처장을 뛰어넘는 권위를 군에 세우지 않기 위해 '예비역 4성 요직 기용 불가'라는 예비역 인사 불문율이 가동됐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민주적 문민통제와 병립할 수 없는 견제의 부재 현상이 두드러졌고, 부작용이 속출했다는 지적입니다.
군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용현 처장이지만 유연하다는 평도 듣습니다. 여야,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언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역 후 일자리를 추구하는 예비역들의 공통적 특징으로 순수한 유연성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예비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의 유연성이 청문회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됩니다.
'유리 천장' 예비역 3성
4성 대장 출신 예비역들도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많이 활동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선 이후 예비역 대장들은 하나같이 기를 못 편다는 것입니다. 국내의 요직은 3성의 예비역 중장 이하들이 독식했고, 예비역 대장들은 잘해야 외국 대사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이번 정부의 국방장관인 이종섭, 신원식은 예비역 중장입니다. 김용현 처장까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예비역 중장이 내리 3번 국방장관을 맡는 것입니다. 사상 처음입니다.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을 마치면서 국방장관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이번 정부에서 못 볼 것 같습니다. 역시 첫 사례입니다. 병무청장, 방사청장도 예비역 중장 이하에게만 기회의 문이 열렸습니다. 군인공제회 이사장, KAI 사장, 방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그리고 국민의힘 공천까지 캠프 출신 예비역 대장은 소외됐습니다.
캠프에서 뛰었던 예비역 대장들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자리는 딱 2개입니다. 콜롬비아와 호주 대사입니다. 콜롬비아 대사는 비인기 직위이고, 호주 대사는 낙마 사태가 없었으면 예비역 중장 이종섭 전 장관의 몫이었습니다. 캠프 요직을 역임했던 한 예비역 장성은 "윤석열 대선 캠프의 예비역 책임자는 김용현 처장이고, 예비역들의 인사 역시 김용현 처장이 좌우하고 있다", "김 처장보다 계급이 높은 예비역 대장을 요직에 앉히면 군 권력의 구심점이 바뀔 수 있어 절대로 예비역 대장에게 국내 요직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예비역 육군 대장에게는 대사직도 안 맡긴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용현 처장을 예비역들의 총사령관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예비역 3성 이하가 국방부를 비롯해 각종 군 기관을 장악한 이상, 군에 대한 지배력도 김용현 처장의 손에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역사상 흔치 않은 국방 일극 체제입니다. 이에 따른 문제점들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질문들이 쏟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예비역 특유의 유연성이란
예비역 장군들은 두루두루 유연합니다. 이낙연 전 총리가 민주당의 차기 주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2020년 1월 2일 저녁, 전역 서류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예비역 대장 2명, 예비역 중장 2명이 삼청동 총리 공관을 찾았습니다. 누구라도 이낙연 전 총리에게 줄을 대고 싶던 때, 예비역 장군들이 이 전 총리의 새해 첫 공식 만찬에 초청 받은 것입니다. 그들에게 민주당 대선 캠프의 안보 총책은 따놓은 당상 같았습니다.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삼청동 만찬 1년 여 만에 4명 모두 윤석열 캠프에 투신했습니다. 이들 중 2명은 외국 대사로, 한명은 방산기업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비역들은 유연해서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는 대표적 사례가 됐습니다. 이들의 변심은 "예비역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일자리"라는 푸념도 낳았습니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가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추진하며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마찰을 빚던 2022년 3월, 청와대 이전 TF 팀장이던 김용현 처장은 "그분들(문재인 정부 청와대측)이 안보 운운하는 자체가 굉장히 역겹다"고 공개 발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김 처장은 진보 정부에 대단한 적개심을 갖고 있는 인물로 인식됐습니다. 사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김용현 처장은 야인 시절이던 2018년 미래실용안보포럼의 주축으로 활동했습니다. 육사 동기이자 절친인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도 포럼에 참가했습니다. 괄목할 점은 더불어민주당이 포럼을 주관했다는 것입니다. 포럼의 좌장은 민주당의 국방 최고 전문가인 안규백 의원이 맡았습니다. 민주당 측 인사들은 "김용현 장군이 계속 민주당과 함께 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가 등장하자 김용현, 정재관 두 장군이 동시에 떠나더라"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김용현 처장이 민주당 대선 캠프에서 일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습니다. 김 처장이 사단장 시절 겪었던 곤욕스런 사건에서 편을 들어준 것도, 비록 무산됐지만 김 처장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천거한 것도 모두 민주당 인사들이었습니다. 그만큼 김용현 처장은 진보와 잘 어울렸고, 민주당은 김 처장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과의 관계, 김 처장의 보수·진보 유연성이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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