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웡 총리 "미중 갈등 최대 우려·육아휴직 30주 대폭 확대"
"美中 경쟁 격화, 무역 의존국에 위기"
30주 육아휴직 도입…저출산 대책 강화
교육·실업 지원 확대…총선 앞둔 승부수
로렌스 웡 싱가포르 신임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지난 5월 취임 이래 나선 첫 연설에서 싱가포르의 가장 큰 지정학적 우려로 "워싱턴과 베이징 간의 격화되는 경쟁"을 짚었다. 국내 복지 정책으로는 유급 육아 휴직 확대와 교육 및 실업 수당 확대를 약속했다.
웡 총리 "미중 경쟁 격화는 싱가포르에 우려"
웡 총리는 이날 국경일 기념 국정 연설에서 워싱턴과 베이징 간의 "격화되는 경쟁"이 싱가포르의 가장 큰 지정학적 우려라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를 "무역과 안정적인 세계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작은 나라"라며 국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상호 의심과 불신은 계속될 것"이라며 국제 무역, 안보, 협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웡은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는지와는 관계없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중국도 미국의 억제를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미·중갈등이 격화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나라로 꼽힌다. 싱가포르의 최대 무역 파트너는 중국인 반면, 미군이 싱가포르에 주둔하는 등 군사력을 일정 부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높은 대외 무역 의존도도 잠재적인 위험 요소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무역 대 국내총생산(GDP) 비율은 지난해 기준 311%에 달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무역 대 GDP 비율은 88%인 것을 감안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웡 총리는 인접국으로 생산설비를 옮기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선진국이 아시아의 저렴한 지역에 생산을 아웃소싱했던 "그 시대는 끝났다"면서 미국, 중국, 유럽 국가들이 공급망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편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아직까지 싱가포르는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해운항만청(MPA)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총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 대비 7.7% 늘었다.
합계출산율 1명 밑으로 떨어지자…30주 육아휴직 파격 도입
웡 총리는 이번 연설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부부의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최대 30주까지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은 2013년 1.19명에서 지난해 기준 0.97명으로 떨어진 데에 따른 해결책으로 풀이된다. 현 규정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는 아내는 16주, 남편은 4주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이중 아내가 쓸 수 있는 16주의 출산 휴가 중 최대 4주를 남편이 양도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육아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남편이 최대 4주를 양도받을 경우 아내는 총 12주, 남편은 총 8주를 육아휴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2026년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서는 부부가 쓸 수 있는 유급 육아휴직 기간은 두 사람이 합쳐 최대 30주에 이른다. 개정안에 따르면, 부모 각각의 육아휴직은 최소 4주간 의무로 보장된다. 아내가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최대 16주로 유지되고, 부부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10주가 더 늘어난다. 내년 4월부터는 아빠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공동 육아 휴직 기간을 6주로 확대하는 과정을 거쳐 2026년에는 10주로 고정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발표됐다.
교육 수당 및 실업 수당 관련 제도도 개편됐다. 내년부터 40세 이상의 모든 싱가포르인들은 전일제(풀타임) 교육 과정을 밟을 경우 월 최대 3000싱가포르달러(약 306만원)의 수당을 받게 된다. 임시 실업지원금은 최대 6개월 동안 최대 6000싱가포르달러(약 613만원)가 지급된다. 싱가포르의 평생 직업훈련 시스템인 '스킬스퓨처(SkillsFuture)'라는 구직자 지원 제도를 이용할 경우에 한해서다. 구직자는 직업 훈련, 일자리 매칭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웡 총리는 실업수당 확대가 단순히 복지 정책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업 수당과 관련해 "혜택을 받은 후 사람들은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보다 실업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에 항상 긍정적인 경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실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했다"고 말했다. 웡 총리는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중산층이 뒤처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목격했다"며 중간 계층을 위한 복지 혜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싱가포르에서 국경일 집회 연설은 국내 주요 정책을 함께 발표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연례행사로 여겨진다. 전략 컨설팅 회사 보어그룹 아시아의 상무이사 니디야 니기어우는 "싱가포르에서는 총선이 내년 11월 이전에 치뤄질 수 있다고 예상되는 만큼, 웡 총리는 이번 연설에서 국민들에게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다"고 분석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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