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증명한 테너 이용훈…예술의전당서 오텔로 연기

임순현 2024. 8. 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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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란도트 '칼라프' 이어 오텔로 섭렵…젊고 거침없는 연기 선사
영국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베르디오페라 카를로 리치 지휘
오페라 '오텔로' 공연 장면 (서울=연합뉴스) 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오텔로'에서 오텔로 역의 이용훈(앞)과 이아고 역의 프랑코 바살로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08.18 [예술의 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테너 이용훈이 18일 저녁, 스스로 '테너의 에베레스트'라고 칭한 최고난도의 오텔로 배역으로 한국 무대에 섰다.

2023년 '노르마'에 이어 영국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옮겨놓은 예술의전당 기획공연이었다. 메트와 로열오페라를 비롯해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들을 주역 테너로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 '아이다'의 라다메스,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투란도트'의 칼라프 등 베르디와 푸치니의 리리코 스핀토(서정성과 강렬하고 힘찬 소리를 겸비한 가수) 배역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아온 이용훈의 목소리를 그동안 국내 관객들은 들어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서울시오페라단 프로덕션에서 그가 선보인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 역은 국제무대에서 이미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만, 오텔로 역을 노래할 수 있게 된 건 이제 50세의 원숙기에 접어든 이용훈에게도 최근의 일이다.

오페라 '오텔로'의 세 주역 (서울=연합뉴스) 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오텔로'에서 오텔로 역의 이용훈(왼쪽)과 데스데모나 역의 흐라추히 바센츠(가운데), 이아고 역의 프랑코 바살로(오른쪽)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08.18 [예술의 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오텔로는 젊고 거침이 없었다. 분노와 고통에 휘둘려 무대를 종횡무진 달리면서도 1막에서 4막까지 이용훈의 에너지 레벨에는 하강이란 없었다.

힘이 넘치는 고음뿐만 아니라 전 음역대에서 그는 강철 같은 경질의 잘 다듬어진 소리와 테크닉으로 귀를 매혹했다.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는 음색의 풍부한 변화도 강점이었다.

그러나 칼라프의 자신감이 오래 몸에 밴 때문일까? 이아고가 마음에 부어 넣은 독이 퍼져가는 동안 의심과 불안에 시달리는 오텔로 내면의 고통과 열등의식은 그의 가창에서 충분히 실감할 수 없었다.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는 원인을 자신의 나이 들어감과 어두운 피부색 등에서 찾는 오텔로의 2막 독백 장면이 일례다. 이런 아쉬움을 개선한다면 그의 오텔로는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카를로 리치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지휘자 카를로 리치가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오텔로'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2024.08.18 [예술의 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오텔로'는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특히 베르디 오페라에 정통한 카를로 리치의 지휘로 더욱 기대를 상승시킨 공연이었다.

2014년 국립오페라단 '오텔로'에도 참여했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당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70여 명의 단원이 3관 편성으로 연주하고 반다(banda. 백스테이지 밴드)까지 함께 해 불협화음 가득하고 복잡하게 중첩된 음악을 섬세하고 박진감 있게 전달했다.

폭풍우와 파도의 음악이 휘몰아치는 유명한 도입부에서 약간 불안한 부분도 있었지만, 오케스트라는 점점 안정을 찾으며 공연을 주도해갔다.

지휘자 박용규가 이끄는 노이 오페라 코러스는 80여 명이 참여해 무대를 가득 채웠고, 이에 CBS소년소녀합창단까지 가세했다. 합창단은 1막의 까다로운 리듬과 화성을 활력이 넘치는 가창으로 소화했고 2막에서 데스데모나가 등장할 때는 초(超)지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데스데모나 역의 흐라추히 바센츠 (서울=연합뉴스)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가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오텔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08.18 [예술의 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로열오페라에서도 데스데모나 역을 맡았던 아르메니아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는 키스 워너의 연출 콘셉트에 따라 일반적인 이 배역보다 더 담대하고 당당한 여주인공을 구현했다. 3막에서 오텔로의 모욕에 맞서는 바센츠의 강렬한 가창과 연기는 데스데모나의 타고난 기품과 자유로운 정신을 보여주었다. 4막에서 데스데모나가 죽기 전에 부르는 '버들의 노래'와 '아베 마리아'에 바센츠는 슬픔과 체념의 정서로 표현력의 정점에 도달했다.

이아고 역을 노래한 프랑코 바살로의 배역 해석은 치밀하고 비범했다. 겉으로는 모두에게 호인처럼 보이면서 내면에는 증오와 악을 품고 있는 이 독특한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바살로는 이아고의 '크레도'("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에서 폭발적인 위력을 드러냈다.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 역의 메조소프라노 최종현은 풍부한 성량과 따뜻한 음색으로 배역의 긍정적인 인성을 표현했고, 카시오 역의 테너 이명현은 명징한 발성과 자연스러운 연기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아고 역의 프랑코 바살로 (서울=연합뉴스) 바리톤 프랑코 바살로가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오텔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08.18 [예술의 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텔로의 심리적 불안을 표현한 검은색 무대와 높은 벽의 수직면들은 시간이 갈수록 조각조각으로 분열된다. 갈등이 정점에 이른 3막 무대의 선홍색은 다가올 살인을 예고하며, 무대가 죽음으로 덮이는 4막은 데스데모나의 결백을 상징하는 백색이다.

조명은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로, 르네상스 스타일에 현대성을 더한 의상들은 그 세련미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공연은 두 캐스트로 21, 22, 24, 25일에 계속된다.

주먹을 들어 보이는 이용훈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테너 이용훈이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오텔로' 공연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4.08.18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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